윤완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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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국회 청문회장. 12·3 비상계엄 때 계엄사령관이었던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은 당시 상황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며 얼버무리고 있었다. 권영환 당시 합참 계엄과장(대령)이 증언대에 섰다. “군인복무기본법 22조 ‘정직의 의무’에 따라 있는 그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권 대령은 국회의 계엄 해제 의결 직후 계엄법에 따라 계엄을 지체 없이 해제해야 한다고 박 총장에게 건의했다가 “일(계엄)이 되게끔 해야 하는데 일머리가 없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밝혔다.
13일 헌재 탄핵심판정. 조성현 수방사 제1경비단장(대령)은 이진우 당시 수방사령관이 국회의원을 끌어내라고 지시했다고 증언했다. “우리가 할 역할이 아니니 지시를 재검토해 달라 했다”고도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 측이 “의인처럼 행동한다”고 비꼬자 이렇게 말했다. “저는 의인도 아닙니다. 제가 아무리 거짓말해도 부하들은 다 알기 때문에 일체 거짓말할 수 없고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때 제가 했던 역할을 진술할 뿐입니다.”
위법 명령 거부 용기, 정직의 용기로
두 사람이 ‘정직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낸 용기가 ‘계엄의 밤’ 그날, 상관의 명령이 위법이라 여기고 따르지 않았던 용기와 연결된다는 점을 주목한다. 권 대령은 계엄을 즉시 해제하지 않는 사령관에게 정면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조 대령은 의원을 끌어내라는 지시를 받은 이후 후속 부대에 국회로 가는 길목인 서강대교를 넘지 말라고 했다. 그는 “그 지시를 들었던 군인 누구도 정상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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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헌적 명령 불복종 가능’ 명시해야
미국이나 독일은 다르다. 미국은 육군 리더십 교리에 제1 핵심 가치인 충성의 제1 대상으로 헌법을 명시했다. “헌법을 위반하는 자에게 충성하면서 헌법에 충성할 수 없다”는 대목이 눈에 띈다. 위헌적 명령에 불복종할 수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시위대에 발포하라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명령을 거부한 마크 밀리 당시 합참의장은 2023년 전역하며 이렇게 얘기했다. “우리는 폭군이나 독재자, 독재자가 되려는 사람에게 충성을 맹세하지 않는다. 또 개인에게 충성을 맹세하지 않는다.” 독일은 연방군 복무규정에서 “군인은 제복 입은 민주시민이어야 한다”며 민주적 기본질서에 대한 충성을 명문화했다. 상관 명령엔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는 계엄 수뇌부가 이를 보면 무슨 생각이 들지 궁금하다.
윤 대통령 탄핵심판이 다음 달 마무리되면 군을 어떻게 개혁할지도 화두가 될 것이다. 계엄의 악몽에도 일부 양심 있는 지휘관들이 있었다고 다행이라 여길 때가 아니다. 군이 다시는 불법 계엄의 도구로 전락해 일선 장교, 사병들의 명예를 더럽히지 않도록 완전히 새로 태어나는 개혁이 필요하다. 군이 충성하고 복종할 가치는 사람이나 정권이 아니라 오직 자유민주적 기본질서가 핵심인 헌법이며, 그에 반하는 명령에 따르지 않을 의무가 있다고 법에 명시하는 것부터 시작하길 바란다. 그것이 계엄의 밤 일선 장교들이 어렵게 보인 용기를 헛되지 않게 하는 일일 것이다.
윤완준 논설위원 zeit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