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영 스타트업 투자심사역(VC)·작가
그동안 나는 중고 판매를 해본 적이 없다. 필요한 물건을 구하기 어려울 때 구매는 몇 번 해봤지만 인건비가 안 나온다는 핑계로 귀찮음 대신 버리는 편을 택해 왔다. 그런데 버리기는 아까운 물건들이 한가득이다 보니, 이번에야말로 입문을 해보기로 했다.
먼저 책장 정리에 나섰다. 붙박이 세 칸에 빼곡한 책 중에 다시 읽지 않을 책들, 오랜 기간 꽂아만 놓고 손이 가지 않았던 책들을 골라내니 반 이상 되었다. 중고 서점에 판매를 해보기로 했다. 책을 선별하고 보내는 일이 대단히 복잡할 줄 알았는데, 웬걸 바코드만 스캔하면 판매가까지 다 나오고 배송은 서점에서 보내주는 수거 가방에 담기만 하면 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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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구 정리가 관건이었다. 신혼 때 들인 아카시아 원목 소재의 바 테이블은 지금 봐도 이만한 게 없을 정도로 마음에 쏙 든다. 다만 자리를 많이 차지하면서 용도는 크게 없기에 이제는 보내 줘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잘 쓰지 않는 화장대도, 지금 집과는 어울리지 않는 빈티지한 스타일의 조명들도 처분 대상이다.
생전 처음 중고 거래 앱에 물건을 올렸다. 사진을 찍고 이런저런 설명을 덧붙이고 가격과 일정을 조율하는 일련의 과정은 수고스러웠지만 하나씩 처분할 때마다 왜인지 뿌듯함이 밀려왔다. 원래대로라면 돈을 내고 버렸을 텐데, 받은 돈도 기대보다 꽤 되었다.
그 외 책장 한구석에서는 한때 아꼈지만 잊고 있던 헤드폰을 찾았다. 충전을 하고 커버를 새로 갈아주었더니 영락없는 새것이 되었다.
이렇게 한바탕 내게 속한 물건들을 되짚고 나니 새 물건을 들이는 일에 보다 신중해진다. 방치해 두었던 물건들도 한 번 더 쓸어보게 된다. 필요와 애호를 자문하고 간소화하는 기분, 오래된 물건들을 정리하고 다듬는 기분이 좋다. 생활을 좀 더 돌보게 되는 느낌이랄까. 물론 그 ‘정리’의 기준이 이제는 기존 라이프스타일과의 작별을 암시하는 듯해 조금은 아쉬운 마음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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