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창간 인촌 김성수 선생 민족교육 중앙학교 경영하는 등 어둠의 시대 ‘선각자의 삶’ 그려 ◇인촌탐사/이진강, 황호택 지음/372쪽·2만4000원·나남
그는 훗날 동아일보를 창간하고 경성방직과 고려대를 설립한 인촌 김성수 선생(1891∼1955)이다. 함께 유학한 친구는 그의 평생 동지로 동아일보사 사장과 한국민주당 수석총무 등을 지낸 독립운동가 고하 송진우 선생(1890∼1945)이다. 만약 두 사람이 당시 유학을 가지 않고 발길을 되돌렸다면 역사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인촌탐사’는 대한변호사협회장을 지낸 이진강 인촌기념회 이사장과 황호택 전 동아일보 논설주간이 인촌 선생의 발자취를 탐사한 책이다. 책 표지에 실린 문구 ‘밝은 길을 찾아가다’는 인촌의 발자취를 되짚어가는 저자들의 취재 과정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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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을 교육해서 무얼 하려는가.”(세키야) “우리 민족도 남과 같이 잘 살게 하고 싶소.”(인촌) “바보 같은 소리! 조선인의 교육은 조선총독부가 잘하고 있다.”(세키야) 하지만 인촌은 대학 인맥까지 동원해 결국 허가를 얻었고, 중앙학교는 3·1운동의 책원지(策源地)이자 민족교육의 터전이 됐다.
인촌은 첫 부인 고광석 여사를 여읜 뒤, 정신여학교 학생으로 3·1 만세 시위에 가담했다가 일경으로부터 고문을 당하고 옥고를 치른 이아주 여사(1899∼1968)와 재혼했다. 이 여사의 애국정신에 감복했기 때문이었다. 전언에 따르면 이 여사에겐 일본 순사에게 채찍으로 맞아 난 상처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고 한다.
인촌의 넷째 아들 김상흠(1919∼1991)은 1939년 항일결사 단체인 조선학생동지회를 결성했다가 일제에 적발돼 1년 넘게 복역하는 등 고초를 겪었다. 당시 사건으로 연락책이던 며느리 고완남(1920∼1991)도 체포돼 고문을 당하고 혹한의 함흥형무소에서 아이를 유산했다. 저자들은 “인촌은 첩첩산중에 밤길을 가는 심정이었을 것”이라고 했다.
여러 관련 장소를 직접 다니며 ‘발로 쓴’ 책이어서 현장의 분위기가 살아있다. 이 이사장은 “인촌이야말로 암울했던 일제강점기와 격랑의 해방공간을 살면서 민족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나라의 독립, 그리고 자유민주주의 국가 건설에 온 힘을 쏟은 민족교육의 선각자요, 문화민족주의자이자 인간자본의 표상임을 깨닫게 됐다”고 집필 동기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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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종엽 기자 jj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