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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밥벌이의 희로애락… ‘월급사실주의’ 속으로

입력 | 2024-05-04 01:40:00

남궁인-손원평 등 문학동인 발간
지금 이곳의 현실 생생하게 담아




2024년 한국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알아보자고 할 때, 사람들은 무슨 기준을 떠올릴까? 대부분이 쉽게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것은 1인당 국내총생산(GDP), 경제성장률, 무역수지, 아파트 매매가 같은 숫자 데이터다. 한국의 경제 규모는 세계 몇 위이며, 서울 아파트 거래와 가격 추이 향방은 어떻게 될 것인지, 은퇴하고 걱정 없이 살려면 얼마를 모아야 하는지….

숫자는 중요하지만 그것이 절대적 기준이라는 생각은 착시 효과다. 정작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을 돌아보면 ‘숫자’를 위한 밥벌이를 하는 가운데 온갖 희로애락이 펼쳐진다. 그렇기에 원하는 ‘숫자’를 채운다고 해도, ‘희로애락’의 과정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삶은 여전히 혼란 속에 놓이기도 한다.

이렇게 ‘숫자’에 가려진 현실의 복잡다단한 양상을 사실적으로 기록해 보자는 문학동인 ‘월급사실주의’의 단편소설 앤솔러지 두 번째 책 ‘인성에 비해 잘 풀린 사람(월급사실주의 2024)’이 출간됐다. 남궁인 손원평 이정연 임현석 정아은 천현우 최유안 한은형의 글을 모았다.

작가들은 지방 방송국 아나운서, 어린이 공부방을 운영하는 사람, 화장품 프랜차이즈 본사 영업부 직원 등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 속에서 펼쳐지는 소소한 드라마를 그린다. 그런 가운데 숫자와 직업이라는 타이틀로는 표현할 수 없는 직업 생활의 부조리함, 그 속에서 인간으로서 느끼는 감정 등이 드러나며 ‘2024년 한국’의 여러 단면들이 이야기의 형태로 나타난다. 산문으로 사랑받았던 남궁인, 천현우의 첫 단편소설과 소설 ‘아몬드’로 잘 알려진 손원평의 최신작이 수록돼 눈길을 끈다.

문학동인 ‘월급사실주의’는 지금 여기(5년 이내), 한국 사회의 먹고사는 문제를 발품을 팔아 사실적으로 쓰자는 규칙을 갖고 있다. 이 동인을 시작한 소설가 장강명은 현실에서 한 발짝 물러나 관념의 세계로 도피하며 ‘문학의 힘은 무력함이다’라고 하는 이야기에 “문학은 힘이 없는 게 아니라 힘 있는 문학이 줄어들었다”고 반박한다. 그러면서 “아름다운 노래가 재난을 당한 이들에게 위로를 줄 수 있고, 찢어지는 비명이 다가오는 재난을 경고할 수 있다”며 “그것이 예술의 힘”이라고 강조한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