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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의 민주당’부터 ‘이재명의 국회’까지 [김지현의 정치언락]

입력 | 2024-04-29 14:00:00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박찬대 원내대표 후보가 4월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 마련된 제22대 총선 개표상황실에서 출구조사 결과를 보며 손을 맞잡고 있다. 박 후보는 최고위원직을 내려놓고 22대 국회 민주당 초대 원내대표 후보로 단독 출마했다. 뉴스1

4·10 총선은 막을 내렸지만, 더불어민주당에선 8월까지 줄줄이 선거가 이어집니다. 22대 국회의 차기 권력을 확정 짓는 원내대표 선거와 국회의장 경선, 그리고 전당대회입니다. 총선이 여야 간의 승자를 가리는 선거였다면 이제부터는 원내 1당 수성에 성공한 민주당 내 밥그릇 싸움인 셈이죠.

일부 후보들은 당의 승리를 일찌감치 직감하고 이미 총선 기간 때부터 차기 당내 선거 준비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자기 지역구는 두고 남의 지역구에 가서 유세해주는 ‘네임드’ 정치인들이 있는가 하면, 정치 신인들에게 “내가 원내대표가 되면 한 자리씩 챙겨줄게”라고 미리 ‘광’을 팔았던 지도부도 있다죠.

‘이 정도면 선거 중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다들 에너지가 참 굉장합니다. 다만 이런 노력들이 무색하게 총선 후 당내 선거 기류는 오로지 ‘명심(明心·이재명의 의중)’만을 향하고 있습니다. ‘이재명의 민주당’은 물론이고 ‘이재명의 국회’까지 완성하려는 ‘빅 픽처’가 시작된 겁니다.


● ‘강성 찐명’ 원내대표 예약
원내대표는 국회 내 교섭단체 간 협상을 주도하는 대표입니다. 민주당은 21대 국회 임기 내에 채 상병 특검법을 강행 처리하겠다는 방침이고, 이 기세를 몰아 22대 국회에서는 전반기부터 ‘입법 성과’를 내겠다는 입장이죠. 이를 위해 가장 필요한 게 여당 입장 따위 안 봐주는 초강성 원내대표입니다. 이 자리에 일찌감치 ‘강성 찐명’ 박찬대 후보가 최고위원직을 내려놓고 단독 입후보한 겁니다.

2022년 8월 당시 당 대표 후보로 제주 4·3 평화공원을 찾은 이재명 대표의 얼굴에서 이물질을 떼어 주는 박찬대 원내대표 후보 모습. 이 대표 왼쪽은 박 후보 출마로 원내대표 출마를 접은 서영교 최고위원이다. 유튜브 화면 캡처

공인회계사 출신인 박 후보는 지난 대선 때부터 이 대표와 함께 한 최측근입니다. 이 대표가 지금도 가장 신뢰하고 자주 대화하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죠. 2022년 8월 당시 당 대표 후보였던 이 대표가 제주에서 기자회견을 마친 뒤 박 의원이 이 대표의 코딱지를 빼내 주는 듯한 모습이 포착돼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다른 각도에서 찍힌 사진을 보면 이 대표 뺨에 묻은 이물질을 떼어주는 듯 합니다.) 이를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이번 총선 기간 중 “민주당은 이재명 대표의 코를 대신 파주는 아첨꾼만 살아남는 정글이 됐다”라고 직격하면서 ‘코딱지 논란’이 2년 만에 다시 화제가 되기도 했죠.

그런 그가 지난 21일 “이재명 대표와 강력한 투톱 체제로 개혁국회, 민생국회를 만들겠다”고 가장 먼저 원내대표 출마를 선언했습니다. 그 직후부터 친명계 지도부의 일사불란한 교통 정리도 이뤄졌고요.

친명계인 서영교 최고위원은 22일 오전 원내대표 출마 선언을 위해 연 기자회견에서 돌연 불출마를 선언했습니다. 그는 “이번에 꼭 원내대표 선거에 출마해 원내대표로 일하고자 했는데, 오늘 최고위원회의에서 다른 내용의 의견이 있었다”며 “지도부에서 (박찬대와 나) 두 명 다 (최고위원을) 사퇴하는 것은 여태껏 있은 적도 없고 무리한 일이라고 했다”고 했습니다. 사실 민주당 당헌 당규상 원내대표로 출마하려면 최고위원직을 사퇴해야 한다는 내용은 없습니다. 그냥 박 후보로 ‘명심’을 몰아준 겁니다. 나머지는 알아서 눈치껏 빠지라는 거죠.

‘암묵적 지침’에 따라 유력 경쟁자였던 김민석 의원도 23일 불출마를 선언했고, 박주민 의원도 후보 등록 당일인 25일 결국 불출마를 선언했습니다. 출마가 점쳐지던 비명계는 일찌감치 접었고요. 한 비명계 의원은 “지금 나가봐야 친명들 ‘자리 쇼핑’하는 데 들러리밖에 더 되겠냐”고 하더군요.

박 후보는 5월 3일 당선자 총회에서 열릴 찬반투표에서 과반 득표를 하면 22대 국회 민주당 초대 원내대표로 임명됩니다. 원내대표 단독 입후보는 2005년 1월 정세균 전 총리 이후 19년 만의 일입니다.


● 과열된 국회의장 경선
통상 3선들 간 원내대표 선거가 치열하고, 최다선끼리 경쟁하는 국회의장 경선은 비교적 점잖게 치러지는 것이 그동안의 관례였는데요, 역시 ‘이재명의 민주당’에선 모든 것이 반대로 이뤄집니다. 5, 6선의 거물급 정치인 4명이 국회의장에 공식 도전장을 내고 때아닌 ‘명심 전쟁’을 치르는 양상이 펼쳐지고 있죠. 관례상 국회의장은 원내1당의 최다선이 맡고, 경쟁이 생길 경우 서로 협의해 양보해왔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6선 조정식 추미애 외에도 5선 우원식 정성호 의원도 뛰어들었죠. 선수(選數)까지 파괴해 가며 4명의 ‘친명’이 서로 ‘명심은 내게 있다’며 경쟁을 벌이는 중입니다.

추미애 국회의장 후보 지지자들이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홍보 포스터.



제10조(의장의 직무) 의장은 국회를 대표하고 의사를 정리하며, 질서를 유지하고 사무를 감독한다.

제20조의2(의장의 당적 보유 금지) ① 의원이 의장으로 당선된 때에는 당선된 다음 날부터 의장으로 재직하는 동안은 당적(黨籍)을 가질 수 없다.
위 국회법 조항처럼 국회의장은 특정 당이 아닌 국회를 대표하는 자리입니다. 중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당선 다음 날 탈당하게 돼 있죠. 하지만 경쟁이 과열되면서 의장 후보들이 연일 대놓고 민주당과 이 대표 편을 드는 발언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국회법이 규정한 중립의 협소함을 넘어서겠다” (우원식 후보)

“여야 협의가 안 되면 다수당의 요구에 따라야 한다” “나는 이재명과 가장 가까운 정치적 동지”(정성호 후보)

“명심은 나한테 있다” “법사위와 운영위는 민주당이 해야 한다”(조정식 후보)

“(국회의장이) 중립은 아니다” “당심도 반영되는 국회의장을 뽑아야 한다” (추미애 후보)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들이, 법으로 정해진 중립의 의무를 가볍게 무시하겠다 하는가 하면, 국가 의전 서열 2위인 국회의 대표를 뽑는데 자기네 당원들 입김을 반영하자는 괴상한 논리를 들이대는 중입니다. 국회의장을 인기투표로 착각하는 것은 아닌지, 이럴 거면 대의민주주의는 대체 왜 필요한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워낙 국회 ‘짬밥’이 있는 중진들끼리 싸움이 붙다 보니 지도부도 원내대표 선거처럼 쉽게 교통정리를 하지는 못하는 모습입니다. 결국 민주당은 이번 국회의장 경선에 결선투표제를 적용하기로 했는데요, 대외적으로는 ‘대표성 강화’가 명분이지만, 실제로는 ‘명심’이 아닌 후보가 당선되는 일을 막기 위한 최후의 장치라는 해석이 많습니다.

국회의장은 원내 1당이 당 내 경선을 통해 추천한 후보가 본회의 무기명 표결에서 재적의원 과반 찬성을 얻으면 당선됩니다.


● ‘이재명 1인 체제’ 되나
치열했던 5월 선거가 끝나면 8월 전당대회가 이어집니다. 새로운 당 대표와 최고위원을 뽑는 선거죠. 관건은 이재명 대표의 연임 여부입니다. 당 안팎에서 연일 연임 요구가 이어지고 있지만 이 대표는 침묵 중입니다.


3월 10일 기자회견에서 당 대표 연임 관련 질문에 답변하는 이 대표 모습. KBS 화면 캡처

그가 당 대표직 연임 여부에 대해 지금까지 공개적으로 언급한 건 지난달 기자회견 때 “당 대표가 정말 3D 중에서도 3D”라며 “누가 억지로 시켜도 다시 하고 싶지 않다”고 한 것이 전부죠. 다만 당시 그는 “공천을 처음 해봤는데 이거 한두 번 더 했다가는 주변 사람 다 잃게 생겼다.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운 과정(이었다)”고 했습니다. 공천을 안 해도 되는 당 대표는 한 번 더 할 수 있다는 것 아니냐는 취지로 해석될 수 있는 배경이겠죠.

실제 ‘친명’ 좌장인 정성호 의원은 최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 대표는 여전히 (연임 여부를) 고민 중인 것 같다”면서도 “국민이 기대하는 입법 성과를 내고, 윤석열 정권의 국정 기조 변화를 유도하려면 상당히 지도력 있는 대표가 당을 계속 끌어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 대표가 당 대표를 지내는 동안 본인의 수사 문제와 당내 (비명계 의원들과의) 이견들로 굉장히 힘들어했는데, 지금은 그런 이견이 없지 않나”라며 “상황이 달라졌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당 대표 연임을 해보는 것도 괜찮다고 조언했다”고 덧붙이더군요.

이 대표 측근들 사이에선 22대 국회 전반기에 이 대표가 연임해 친명 국회의장-친명 원내대표와의 삼각 편대로 ‘입법 드라이브’를 이어가고 이를 토대로 ‘대권 플랜’을 본격화한다는 구상이 나옵니다. 친명 핵심 관계자는 “이 대표의 성남시장-경기도지사 시절 일 잘하는, 유능한 이미지를 22대 국회 제1야당 대표로서도 보여줘야 한다. 그런 입법 성과를 토대로 차기 대선을 준비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림이 이렇게 완성되면 결국 이 대표도 “안하고 싶은 데 당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한 번 더 십자가를 지겠다”는 식으로 나올 가능성이 높아질 듯 합니다. 현재의 침묵도 그를 위한 ‘빌드업’일 거고요.


대선을 앞두고 2021년 11월 이재명 당시 민주당 대선 후보가 민주당에 대한 대대적인 쇄신을 예고하며 “민주당의 이재명이 아니라 이재명의 민주당으로 만들겠다”고 발언하는 모습. YTN 화면 캡처

2021년 11월 “민주당의 이재명이 아니라 이재명의 민주당으로 만들어가겠다”고 예고했던 그는 실제 2년여 만에 ‘이재명의 민주당’을 완성했습니다. 그런 식으로 ‘이재명의 국회’도 완성할 것인지 정치권이 주목하고 있습니다.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