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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허설중 로봇배우 ‘전원 OFF’… 개막 하루전 공연 연기사태

입력 | 2024-04-10 03:00:00

전회차 매진된 연극 ‘천 개의 파랑’
“광클 예매했는데 허탈” 볼멘소리
로봇 완성 안된채 티켓판매 논란



국립극단 연극 ‘천 개의 파랑’은 휴머노이드 기수 역할의 주인공 콜리(왼쪽)를 실제 로봇 배우가 연기하기로 하면서 화제가 된 작품이다. 사진은 로봇 제작 전, 콜리 모형을 두고 연습하고 있는 모습. 국립극단 제공


“‘광클’해서 어렵게 예매했는데 공연이 갑자기 연기되니 허탈하네요.”

최근 국립극단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댓글창엔 관객들의 볼멘소리가 이어졌다. 국립극단의 연극 ‘천 개의 파랑’이 개막 하루 전에 공연이 돌연 연기됐기 때문. 이 공연은 국립극단 창단 74년 역사상 처음으로 로봇 배우가 무대에 오르게 돼 큰 화제였다. 예매 경쟁도 치열해 예매 시작 하루 만에 전 회차, 전석이 매진됐었다.

극단이 공연 연기 결정을 내린 것은 무대에 서는 로봇 배우 ‘콜리’가 막바지 리허설 도중에 전원이 꺼져버렸기 때문이다. 조사 결과 회로 설계상의 문제가 발견됐고, 재점검이 필요하다는 판단이 내려졌다. 이에 당초 4일이었던 개막일이 16일로 연기된 것. 회로 재점검을 마친 ‘콜리’는 10일부터 이어지는 리허설에 다시 나설 예정이다. 공연이 재조정된 일정대로 진행될지는 아직 불투명한 상황이다.

최근 인공지능(AI) 열풍은 공연계에도 ‘로봇 공연’이란 새바람을 불러왔다. 지난해 6월 국립국악관현악단이 한국생산기술연구원과 손잡고 국내 첫 로봇 지휘자 ‘에버6’를 선보인 것이 대표적이다. 당시 공연은 티켓 1200여 장이 매진되며 흥행에 성공했다. 이번 ‘천개의 파랑’ 역시 젊은 관객층을 중심으로 티켓 쟁탈전이 뜨거웠다. 새로운 형식의 공연에 대한 기대감이 큰 것이다.

하지만 ‘천 개의 파랑’ 공연 과정을 들여다보면 상대적으로 준비가 철저하지 못했다는 느낌도 든다. 앞서 국립국악관현악은 한국생산기술연구원이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에버6를 지휘자 역할에 맞게 1년 가까이 연구 및 개조해 무대에 세웠다. 하지만 국립극단은 지난해 12월 로봇 개발 업체와 계약을 맺은 뒤 지난달 중순에야 로봇 제작을 완료했다. 티켓은 지난달 초순부터 판매되기 시작했으니 로봇도 완성하지 않고 ‘로봇 공연’을 하겠다고 나선 셈이다.

중요한 것은 앞으로 로봇 등이 접목된 ‘기술 융합 공연’이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에 제작이나 공연 시스템을 보다 세밀히 마련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이동욱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수석연구원은 “공연 중 로봇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대처할 상황별 가이드라인이 미비하다. 단 며칠 주어지는 리허설만으로는 현장을 파악하기엔 역부족”이라고 말했다. 엄현희 연극평론가는 “작품을 본격 제작하기 전에 해외 공연계처럼 ‘기술 랩(lab)’을 진행하는 등 수년간 단계별로 개발해야 같은 문제가 재발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