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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김현수]美 주별 경쟁에서 배우는 반도체 공장 유치법

입력 | 2024-04-07 23:45:00

김현수 뉴욕 특파원


미국 내 반도체 공장 유치 전쟁을 취재하다가 재미있는 사실을 알게 됐다. 50개 주가 치열한 경쟁을 벌이며 ‘반도체 프렌들리’ 환경으로 스스로 진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유치전의 실패를 거울삼아 교육이나 인프라에 더 투자하고, 이를 바탕으로 다음 도전을 준비하는 식이다.

지난주 SK하이닉스가 38억7000만 달러(약 5조2000억 원) 투자를 발표한 미 인디애나주는 2022년 인텔의 200억 달러(약 27조 원) 규모의 공장 유치전에서 실패한 경험이 있다. 당시 이웃한 오하이오주와 접전 끝에 졌다.


인텔 유치 실패서 배운 인디애나주


오하이오주가 인디애나주보다 세액공제나 직접 보조금과 같은 인센티브를 더 많이 약속했기 때문일까?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보조금은 비슷하게 불렀지만 두 주의 가장 큰 차이는 ‘풍부한 인력’이었다는 것이 당시 미 언론의 분석이다.

채용할 수 있는 반도체 고급 인력이 얼마나 풍부한지가 중요 조건이었고, 오하이오주 콜럼버스시의 대졸 인력 수가 매력적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인텔의 오하이오주 새 공장 부지는 오하이오주립대에서 차로 25분 거리다. 좀 더 거리를 넓혀서 차로 수 시간 내에 있는 카네기멜런대의 존재도 영향을 미쳤다.

인텔 유치전 당시 인디애나주 상무장관이었던 브래드 챔버스는 뉴욕타임스(NYT) 인터뷰에서 “많은 교훈을 얻었다. 가장 큰 교훈은 대형 반도체 회사에 제공할 수 있는 토지, 인프라, 인력 프로그램을 좀 더 매력적인 패키지로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고 밝혔다. 보조금은 당연하고 그 이외의 종합 패키지도 필요함을 뼈저리게 느낀 것이다.



보조금은 기본, 대학도 유치전 올인


인텔 유치 실패 후 2년 동안 ‘풍부한 인력’ 부문에서 높은 점수를 따기 위해 주내 이공계 명문대로 꼽히는 퍼듀대가 나섰다. 퍼듀대는 2022년 미국 최초로 반도체학위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지난해에는 1억 달러(약 1300억 원)를 투자해 5년 내 반도체 전문 교수 50여 명을 채용하겠다고 밝혔다. 똑똑한 박사 지망생을 데려오기 위한 지원 프로그램도 만들었다. 인디애나주에 18억 달러(약 2조4000억 원) 투자를 약속한 미 반도체 기업 스카이워터가 퍼듀대의 노력에 감동을 받아 다른 4개 주를 제치고 인디애나주를 택했다는 보도가 나올 정도다.

퍼듀대는 이번 SK하이닉스 투자에서도 주요 파트너로 부상했다. SK하이닉스의 새 고대역폭메모리(HBM) 패키징 생산기지는 학내 연구단지에 위치한다. 퍼듀대는 부지 할인 등을 포함해 SK하이닉스에 약 6000만 달러(약 808억 원)의 지원도 약속했다.

일개 대학뿐만 아니라 주 정부의 1조 원 규모 직간접 보조금, 시 정부의 지원, 지역 에너지 기업까지 파트너로 참여해 SK하이닉스 유치전에 뛰어들었다. 데이비드 로젠버그 인디애나주 상무장관도 기자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우리는 반도체 생태계를 만들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고 거듭 강조했다.

SK하이닉스 유치전에서 실패한 또 다른 주는 아마 이번 실패를 교훈 삼아 또 다른 ‘반도체 프렌들리’ 전략을 짜고 있을 것이다. 경쟁을 통해 빠른 시간 내에 변화하는 모습은 무섭기까지 하다. 팬데믹으로 공급망 안보 개념이 부상하고 각국의 반도체 보조금 전쟁이 촉발된 지 2년 만에 인디애나주는 ‘0개’였던 반도체 공장을 ‘8개’로 늘렸다. 골든타임 2년간 한국은 무엇을 했는지 묻고 싶다.




김현수 뉴욕 특파원 kimh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