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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누비는 명품 무기들… K방산, 거침없이 날아오른다

입력 | 2024-03-28 03:00:00

[新 자주국방]해외서 존재감 키우는 국산 무기
2022년 사상 최대 글로벌 실적 이후… 한국판 패트리엇 ‘천궁-2’도 수출
‘레드백’은 호주에 3조원 공급 계약
작년 18조 원 성과, ‘4대 강국’ 성큼
세계 시장서 역량-납품 신뢰 높아… 수출입은행법 개정돼 수주전 활기




한국과 필리핀 수교 75주년을 맞아 공군 특수비행팀 블랙이글스가 3일(현지 시간) 필리핀 클라크 공군기지에서 열린 에어쇼에서 화려한 기동을 선보이고 있다. 블랙이글스의 T-50B와 2015년 필리핀에 수출된 FA-50은 모두 국산 초음속 고등훈련기인 T-50을 기반으로 제작됐다. FA-50은 폴란드(2022년), 말레이시아(2023년)와도 수출 계약에 성공하면서 K방산의 훈풍을 이어가고 있다. 공군 제공

이달 초 필리핀의 클라크 공군기지 상공에 고막을 찢는 굉음과 함께 형형색색의 연기가 피어올랐다. 공군 특수비행팀 블랙이글스가 한국-필리핀 수교 75주년을 맞아 열린 에어쇼에서 환상적인 곡예 기동을 선보인 것. 지상에선 두 나라 정부 관계자를 비롯한 관람객들의 탄성과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이어 블랙이글스의 T-50B 8대와 필리핀 공군의 FA-50PH 4대의 우정 비행도 펼쳐졌다. FA-50은 국산 초음속 고등훈련기인 T-50을 기반으로 제작된 경공격기다. 2015년에 필리핀에 수출된 이후 실전에서 큰 전과를 올려 주력 전투기로 자리 잡았다. 군 관계자는 “K방산의 달라진 위상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라고 말했다. 필리핀은 FA-50의 성능 개량과 전투기 추가 도입을 적극적으로 검토 중이다. 그뿐만 아니라 유럽과 중동 등에서도 한국산 무기의 ‘러브콜’이 이어지면서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K방산의 질주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어지는 수출 낭보, 4대 방산 강국 목표에 ‘성큼’


지난해 11월 사우디아라비아에 수출하기로 확정된 국산 중거리 지대공유도무기인 ‘천궁Ⅱ’. LIG넥스원 제공

러시아의 무력 침공으로 촉발된 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로 세계적 군비 확장 기조가 지속되면서 세계 방산시장에서 한국산 무기의 존재감은 점점 커지고 있다. 2022년 폴란드에 K2 전차와 K9 자주포, FA-50 경공격기 등 최대 40조 원 규모의 수출액을 올리면서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한 K방산의 주력 무기들은 이후로도 경쟁국 기종을 제치고 수조 원대의 추가 수주에 성공하는 등 전례 없는 호황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달 초에는 LIG 넥스원이 제작한 국산 중거리 지대공 유도무기인 ‘천궁-2’의 사우디아라비아 수출 확정 낭보가 날아들었다. 수출 규모는 10개 포대, 금액은 약 32억 달러(약 4조2800억 원)에 달한다. ‘한국판 패트리엇’으로 불리는 천궁-2는 적 항공기와 탄도미사일을 모두 요격할 수 있다. 군 당국자는 “무기 구매에 까다로운 사우디가 요격미사일과 같은 핵심 무기를 미국이 아닌 제3국에서 도입한 전례가 없다”고 말했다. 2022년 아랍에미리트(UAE)에 이어 사우디가 천궁-2 도입을 결정하면서 중동 지역에서 국산 요격무기의 우수성을 확실히 인정받는 계기가 됐다는 얘기다.

이에 앞서 지난해 12월에는 한화그룹이 개발한 국산 보병전투장갑차 ‘레드백’의 호주 수출 본계약이 성사됐다. 레드백 129대와 관련 부품 등을 포함해 약 24억 달러(약 3조2000억 원)에 공급하는 내용이다. 전차와 장갑차 강국인 독일과 영국 등을 따돌리고 이뤄낸 성과라는 점에서 K방산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는 평가가 많다. 호주군에 최적화된 설계 제작과 현지 생산 등 철저한 현지화 전략이 주효했다는 분석이다.

올해도 조 단위의 방산 수출이 잇달아 확정되면서 정부가 제시한 ‘4대 방산 강국’의 목표에 성큼 다가설 것으로 기대된다. 군과 방산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방산 수출은 약 140억 달러(약 18조7000억 원)로 잠정 집계됐다. 2년 연속으로 세계 톱 10 방산 수출국에 이름을 올린 것. 전년도 실적인 173억 달러에는 다소 못 미치는 수준이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고무적이라는 평가다.

수출 대상국이 2022년 폴란드 등 4개국에서 지난해 UAE와 핀란드, 노르웨이 등 12개국으로 크게 늘었고, 수출 무기 종류도 6개에서 12개로 확대됐기 때문이다. CNN 등 외신들은 K방산이 고도성장의 본궤도에 올랐다는 전망을 속속 내놓고 있다. 최근 이라크와 사우디아라비아의 국방 당국자들이 연이어 방한해 국산헬기(수리온)와 전투기(KF-21 보라매), 잠수함(도산안창호함) 등의 운용 상황을 둘러본 것도 이런 분석에 무게를 싣고 있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최근 몇 년간 수주 잔량이 역대급으로 늘어난 데다 유럽과 중동 등 다수 국가와 진행 중인 무기 수출 계약도 성사될 가능성이 커 올해 사상 첫 200억 달러 수출 돌파 가능성도 점쳐진다”고 말했다.



‘가성비’를 넘어 글로벌 ‘명품 무기’로 도약해야


한국 무기가 세계 방산시장에서 전례 없는 특수를 누리는 데는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촉발된 국제적인 군비 확장 기조가 주된 역할을 한 게 사실이다. 영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가 최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 각국이 지출한 국방비는 2조2000억 달러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고, 올해는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한국 무기가 뛰어난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를 갖추지 못했다면 지금과 같은 K방산의 부흥기를 맞을 수 없었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실제로 전차와 요격미사일 등 한국의 수출 주력 무기들은 미국·유럽 등 방산 강국의 경쟁 기종과 대등하거나 우수한 성능을 갖췄음에도 가격은 절반 수준으로 평가된다.

북한의 군사적 위협에 맞서 꾸준한 기술 개발과 함께 실전 배치를 통해 성능을 충분히 검증받았다는 것도 한국 무기의 장점이다. 또 미국과 유럽이 냉전 해체 이후 재래식 무기 생산을 크게 축소해온 반면 한국은 대규모 생산설비를 유지해 수요국이 희망하는 적기에 맞춰 납품할 수 있다는 점도 K방산의 신뢰도를 높이는 데 이바지했다는 지적이다. 군 당국자는 “한국 무기는 타국 기종보다 운영 유지비가 저렴한 데다 장기간 축적된 운용 경험을 통한 원활한 부품 조달 등 후속 군수지원이 용이해서 구매국의 만족도가 대단히 높다”고 말했다.

아울러 미국과 유럽 등 일부 방산 강국에 지나치게 편중된 무기 구매 시스템의 한계와 부작용에서 벗어나기 위해 세계 각국이 한국산 무기를 최적의 대안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정부 관계자는 “국산 무기가 ‘가성비’를 넘어 세계 시장에서 ‘명품 무기’로 우뚝 설 수 있도록 기술 개발과 함께 범정부 차원의 지원책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범정부 차원의 법적·제도적 ‘지원사격’ 이어져야

그 연장선에서 지난달 국회를 통과한 ‘수출입은행법 개정안’은 고무적인 사례로 꼽힌다. 한국수출입은행의 법정자본금 한도가 현행 15조 원에서 25조 원으로 늘어나면서 국내 방산업계에 대한 수출 금융 지원 규모가 대폭 확대됐기 때문이다. 폴란드와 체결한 잔여 무기 수출을 차질 없이 이행할 수 있게 됐고, 다른 나라 시장을 겨냥한 추가 수주전에도 활력을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된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K방산이 치열한 글로벌 경쟁에서 한 단계 도약할수 있는 촉매제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윤석열 대통령이 주재한 ‘방산 수출전략 회의’에서 2027년까지 세계 4대 방산 강국으로 도약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하고, 이를 위한 추진 전략을 발표했다. 올해 초에 발표한 ‘2024년 경제정책 방향’에서도 방산 기술을 신성장·원천기술로 지정해 수주 확대를 뒷받침하고, 권역별·거점국 진출 전략을 차별화하겠다고 강조한 바 있다.

전문가들은 수출 금융 지원뿐만 아니라 지체상금(납기 지연 벌금)의 대폭 감면과 불합리한 방산 관련 규제를 과감히 철폐해 K방산이 세계 시장에서 더 큰 성과를 내도록 법적·제도적 지원사격이 절실하다고 입을 모은다.

아울러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드론 등 4차 산업혁명의 첨단기술을 방위산업에 접목해 국산 무기장비의 경쟁력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도록 연구 인력과 기술, 역량을 결집시킬 수 있는 범정부 차원의 기구 설치 등도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