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암흑물질은 신기루”…새 우주 이론 등장에 과학계 갑론을박

입력 | 2024-03-15 03:00:00

영국 연구팀, 대안 중력 이론 제시



은하의 회전운동을 암흑물질 없이 설명할 수 있다는 논문이 발표됐다.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


전통적인 과학 통념에 어긋나는 우주 이론이 제시돼 과학계에 논란을 예고했다. 물리천문학계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암흑물질 없이 우주 팽창과 은하 회전운동을 설명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조너선 오펜하임 영국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UCL) 교수 연구팀은 지난달 29일 논문 사전게재 사이트 ‘아카이브(Arxiv)’에 암흑물질로 설명해온 우주 현상을 암흑물질 없이 설명할 수 있다는 논문을 발표해 논란을 일으켰다.

● 시공간 불규칙으로 ‘은하 회전운동’ 설명

기존 우주론에 따르면 우주에 존재하는 물질 중 인간이 볼 수 있는 물질은 항성, 행성 같은 천체와 가스 등으로 고작 약 5%에 불과하다. 과학자들은 우주의 나머지 68%가 암흑에너지, 27%는 암흑물질로 이뤄져 있다고 설명한다. 암흑에너지와 암흑물질은 우주 팽창을 가속화하는 힘으로 추정된다.

암흑물질의 존재는 이론적으로 중력으로 설명된다. ‘힉스 입자’ 존재를 실험적으로 입증한 거대강입자가속기(LHC)를 통해서도 관측되지 않지만 과학자들은 암흑물질 없이 은하계의 운동 패턴 등을 설명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존재를 인정하고 있다.

오펜하임 교수는 이번 논문에서 암흑물질의 존재 가능성에 의구심을 제기했다. 새 중력 이론인 ‘고전 중력의 포스트 양자 이론’을 통해 암흑물질은 ‘신기루’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고전 중력의 포스트 양자 이론은 현대 물리학의 두 축인 양자 이론과 아인슈타인의 이론인 일반 상대성 이론을 통합한 이론이다.

오펜하임 교수는 새 중력 이론을 통해 암흑물질 없이 은하의 회전운동을 설명했다. 은하계의 가장자리에 있는 별들은 중력이 약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중심에 있는 별들보다 느리게 회전해야 하지만 실제론 거리와 무관하게 일정한 궤도 운동 속도를 보인다. 이 때문에 천문학자들은 은하의 회전운동에 관여하는 물질이 있을 것으로 보고 이를 암흑물질로 칭했다.

오펜하임 교수는 별들이 일정한 속도로 도는 데 필요한 에너지는 암흑물질이 아니라 시공간의 무작위적인 변동에 의해 생긴다고 설명했다. 그는 “우주 에너지의 95%는 시공간의 불규칙한 특성 때문”이라며 “암흑물질이나 암흑에너지 없이도 우주의 팽창과 은하의 회전을 설명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암흑물질에 대한 직접적인 증거는 아직 없다”며 “결함이 있는 개념이라는 사실이 확인된 ‘에테르’처럼 의문을 갖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 천문학 데이터 통한 검증 필요

오펜하임 교수는 천문학자가 아닌 양자 전문가로, 학계는 이번 논문에 대해 천문학적인 관점에서 검증이 필요하다고 본다. 홍성욱 한국천문연구원 이론천문센터 선임연구원은 “물리 이론에 가까운 내용이기 때문에 천문학계에서 평가할 단계는 아직 아니다”라며 “주장의 옳고 그름을 떠나 검증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암흑물질 없이 은하 회전운동을 설명했다고 해서 암흑물질 개념을 폐기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X선과 중력렌즈로 관측한 은하단의 물질 분포가 다르다는 점, 우주 전체의 구조 형성 등은 암흑물질 없이 설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기존 중력 이론도 결점이 있는 만큼 대안중력 이론을 등한시할 수 없다는 의견도 있다. 암흑물질 없이 우주 현상을 설명해온 국내 연구자 채규현 세종대 물리천문학과 교수는 “암흑물질은 표준중력이론이 우주 전 영역에서 성립한다고 가정할 때 필요한 개념”이라며 “표준중력이 약한 가속도에서 붕괴한다는 증거가 있어 암흑물질, 암흑에너지를 가정한 표준 패러다임이 도전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오펜하임 교수의 주장은 아직 이론에 머물고 있어 천문학적 데이터 근거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비쳤다.

오펜하임 교수의 논문이 심사를 통과해 국제학술지에 게재되면 학계의 주목도는 더욱 올라갈 것으로 보인다. 황호성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는 “오펜하임 교수의 논문 내용 자체는 그럴듯하다”며 “아직 동료 전문가 심사가 끝나지 않아서 심사가 끝났을 땐 좀 더 의미 있는 주장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이론 자체가 말이 되더라도 암흑물질이 없다는 직접적인 증거를 찾기 위한 많은 검증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암흑물질은 미지의 영역이지만 부정할 수도 없는 개념인 만큼 대안중력 이론에 대한 체계적인 검증이 필요하다. 황 교수는 “암흑물질이 제시된 지 100년이 됐지만 아직 정체를 모른다”며 “대안중력 이론은 흥미롭지만 관측을 통한 입증이 필요해 아직 갈 길이 먼 분야”라고 말했다.


문세영 동아사이언스 기자 moon0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