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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개 병원 전공의 715명 사직서 제출

입력 | 2024-02-19 03:00:00

[의료대란 폭풍전야]
정부 “근무 현황 매일 보고” 지시
원광대 의대 160명 집단 휴학계



한덕수 총리 “국민 생명 볼모 안돼” 18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한덕수 국무총리(왼쪽에서 세번째)가 의사 집단행동 관련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한 총리는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볼모로 삼는 건 있어서는 안 될 일”이라며 전공의들에게 “의료 현장과 환자 곁을 지켜 달라”고 당부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빅5 병원(서울대, 세브란스, 서울아산, 삼성서울, 서울성모병원) 전공의들이 예고한 집단 사직서 제출 시한(19일)이 하루 앞으로 다가온 18일 한덕수 국무총리가 대국민 담화를 갖고 “의료 공백은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볼모로 삼는 일”이라며 의사단체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빅5 전공의들은 20일 오전 6시부터 근무 중단을 결의한 상태다.

한 총리는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절대적 의사 수가 확보되지 않는다면 의료개혁은 절대 성공할 수 없다”고 의대 정원 확대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도 “병원을 떠나는 건 환자와 국민을 죽음으로 내모는 행위”라며 “국민이 있고 환자가 있어야 의사가 있다”고 했다. 또 “(의사들이 반대하는) 2000명 증원 규모를 조정할 가능성은 없다”고 덧붙였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16일 오후 6시까지 사직서를 낸 전공의는 23개 병원, 715명이다. 이 중 병원을 이탈한 전공의 103명 중 3명은 업무개시명령에도 복귀하지 않고 있다. 복지부는 수련병원 221곳에 ‘전공의 근무 현황을 매일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한편 무기한 파업을 예고한 대한의사협회(의협)는 18일 “한 총리의 담화는 전공의와 의대생을 처벌하기 위한 명분 쌓기”라며 반발했다. 또 원광대 의대는 전국 의대 중 처음으로 재학생 160명이 집단 휴학계를 제출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학부모 서명 등 요건이 미비해 반려 처리될 것”이라고 했다.




빅5병원-국립암센터 수술 절반 연기… “날짜 확정 못해” 통보도



진료 일정 조정 등 개별 통보 시작
환자들 “갑자기 취소 말도 안돼”
일부 병원선 외래진료까지 차질
의협 “의사 악마화, 대재앙 맞을것”

“엊그제만 해도 ‘이달 내로 수술하자’더니 돌연 취소가 말이 되나요.”

18일 오후 7시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1층 로비에서 만난 김모 씨(57)는 간암을 앓고 있는 남편 걱정에 한숨부터 내쉬었다. 지난해부터 외래 진료와 입원 치료를 반복하던 김 씨의 남편은 며칠 전 증상이 심해져 응급환자로 이 병원에 들어왔다. 병원 측에서 먼저 수술 날짜를 앞당기자고 했다. 그러나 김 씨는 이날 병원으로부터 돌연 “수술 날짜를 확정지을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김 씨는 “(의료) 파업 여파가 아닐까 싶다. 기한 없이 기다리는 상황에서 큰일이라도 일어날까 두렵다”고 했다.



● 환자들 “수술 취소되고 일정도 확정 안 돼”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18일 이른바 ‘빅5’ 병원(서울대, 세브란스, 서울아산, 삼성서울, 서울성모병원) 곳곳에서 수술 건수를 절반 가까이 줄이는 등 수술 일정 조율에 나선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서울병원은 18일부터 의료진이 개별적으로 환자에게 전화를 걸어 수술 연기 방침을 전달하고 있다. 19일부터 수술을 평소 대비 절반으로 줄이기로 한 세브란스병원도 수술 연기 환자를 선별해 통보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루 평균 45건 안팎의 수술을 진행하던 국립암센터는 20∼23일 예정 수술 중 절반가량을 연기하기로 했다. 서홍관 국립암센터 원장은 “암센터 환자들은 모두 중증이라 파업이 길어지면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이 크다”고 말했다. 국립암센터엔 총 70명의 전공의가 근무 중이다. 한 직장인은 온라인 커뮤니티에 “전공의 파업으로 어머니 수술이 취소됐다. 다음 일정도 확정 안 된 이 상황이 지옥”이라고 하소연했다.

일부 병원에선 외래 진료까지 밀리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황모 씨(72)는 “아내가 고령인데다 폐렴 증상이 심해 입원을 요청했으나 병원에서는 이유도 알려주지 않은 채 계속 거부했다”고 말했다. 파업으로 수술 날짜가 조정되며 지정 헌혈 날짜까지 바꿔야 할 처지에 놓였다는 혈소판감소증 환자도 있었다. 이 환자는 “고위험 산모여서 대학병원을 선택했는데 동네 병원보다 더 나 몰라라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전공의 사직에 따른 의료 공백을 간호사나 응급구조사 등 다른 직군이 메우게 하려다 반발에 부닥친 병원도 있었다. 서울아산병원 소속의 한 간호사는 “의사 파업으로 간호사에게 업무가 넘어오는 것에 대해 무력감만 느낀다”고 전했다. 보건의료노조는 18일 대국민 호소문을 통해 “의사 집단 진료 중단은 국민 생명을 내팽개치는 비윤리적 행위”라고 규탄했다.

지역 병원에서도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광주·전남 지역의 3차 병원인 전남대병원과 조선대병원 전공의들이 19일 개별적으로 사직서를 제출한 뒤 무단결근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부산시도 부산대병원과 동아대병원 등 5개 대학병원 전공의들(약 880명)의 사직서 제출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대책을 수립 중이다.



● ‘개인적 사직’에 복지부 “집단 사직 판단할 것”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16일 오후 6시까지 전국 수련병원 23곳에서 전공의 715명이 사직서를 제출했다. 세브란스병원 소아청소년과 의국장이라고 밝힌 전공의 4년 차 김혜민 씨는 17일 입장문을 통해 사직서를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의국장은 전공의들을 통솔하는 최고참 전공의다. 김 씨는“아파도 병가는 꿈도 못 꾸고, 수액 달고 폴대 끌며 근무해왔다. 엄마 역할을 포기할 수는 없으니 소아청소년과 의사를 포기하고 피부미용 일반의를 하며 살아가겠다”고 밝혔다.

복지부는 사직의 표면적 사유가 개인 사정이라고 해도 집단 사직을 공모했거나 동료들의 동반 사직을 독려한 정황이 있다면 집단 사직으로 판단하고 병원들이 사직서 수리를 하지 않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사직 이후 동료들의 사직서 제출이 이어진다면, 집단 사직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것. 대한의사협회는 18일 성명을 통해 “의사를 악마화하면서 마녀사냥하는 정부 행태가 변하지 않았다”며 “정부가 의대생, 전공의들의 자유의사에 기반한 행동에 위헌적 프레임을 씌워 처벌하려 한다면 의료 대재앙을 맞이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지운 기자 easy@donga.com
전주영 기자 aimhigh@donga.com
최훈진 기자 choigiza@donga.com
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
광주=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임재혁 기자 heo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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