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크로스만 진심이었던 클린스만 감독[데이터 비키니]

입력 | 2024-02-17 08:00:00


위르겐 클린스만 전 한국 축구 대표팀 감독. 도하=뉴스1

“2018년에 빚진 걸 이제야 갚을 수 있게 됐다.”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60·독일)이 한국 남자 축구 대표팀 지휘봉을 잡는다는 소식이 들리자 독일 축구 팬 사이에서 이런 우스개가 유행했습니다.

독일 남자 축구 대표팀은 2018년 러시아 월드컵 조별리그 F조 최종전에서 한국에 0-2로 패하면서 사상 첫 조별리그 탈락 기록을 남겼습니다.

‘빚을 갚았다’고 표현한 건 클린스만 감독이 독일을 대표하는 공격수였던 선수 시절과 달리 전술적인 면에서는 별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한국에서도 ‘무(無)전술’이라는 평가 속에 354일 만에 불명예 퇴진하고 말았습니다.

피치에서 선수가 머무는 공간과 그래프에서 선수가 차지하는 위치는 관계가 없습니다.

축구에서 전술을 분석하는 첫걸음은 패스 특징을 분석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번 카타르 아시안컵 한국 대표팀 패스 네트워크에서 제일 중요한 선수는 황인범(28·츠르베나 즈베즈다)이었습니다.

황인범은 공격과 수비의 연결 고리라고 할 수 있는 선수니까 이상한 일도 아닙니다.

황인범은 이번 대회를 통틀어 패스 성공이 가장 많은(528번) 선수이기도 합니다.

선수들을 공격수와 수비수로 크게 나누면 설영우(26·울산)가 패스 과정에서 제일 중요한 선수였다는 것도 별로 이상하지 않습니다.

사실 호주와 맞붙은 8강전까지는 김민재(28·바이에른 뮌헨)가 제일 중요한 수비수였는데 준결승에 출전하지 못하면서 뒤로 밀렸습니다.

아시안컵 8강 호주전에서 크로스를 올리고 있는 이강인. 알와크라=뉴스1

공격수 가운데는 이강인(23·파리 생제르맹·PSG)이 제일 중요한 선수였습니다.

그리고 이강인이 패스 네트워크에서 제일 중요한 선수가 된 건 ‘크로스’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강인은 이번 대회 때 크로스를 총 69번 시도했습니다.

이 부문 공동 2위(36번)인 김태환(34·전북), 아크람 아피프(28·카타르)와 비교해도 1.9배 많은 숫자입니다.

한국에서는 역시 공동 10위(24번)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이번 대회 크로스 톱10 안에 세 명이 이름을 올린 나라는 한국밖에 없습니다.

한국 선수만 세 명.

그렇다는 건 전체적으로 크로스가 많았다는 뜻.

한국은 이번 대회 6경기를 치르는 동안 크로스를 총 178번 기록했습니다.

2위 이란(125개)과 비교해도 40% 이상 많은 숫자입니다.

물론 경기를 많이 치르면 크로스 누적 횟수도 자연스레 늘어나게 마련입니다.

한국은 90분당 평균 크로스 횟수(26.6번) 역시 팔레스타인(30.5번)에 이어 2위였습니다.

이번 대회 전체 평균이 17.2번이니까 한국은 다른 팀과 비교해도 10분에 한 번 정도 크로스를 더 올린 셈이 됩니다.

한국과 이란은 똑같이 6경기 소화

요컨대 전임 파울루 벤투(55·포르투갈) 감독을 대표하는 키워드가 ‘빌드업’이었다면 클린스만 감독은 ‘크로스만 감독’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크로스는 ‘이게 정말 효과적인 전술인가?’라는 물음이 따라다니는 공격 방법입니다.

그래서 유럽 5대 리그(독일 스페인 이탈리아 잉글랜드 프랑스)에서도 크로스가 줄어드는 추세입니다.

2017~2018시즌에는 총 3576경기에서 크로스가 6만6819번 나왔습니다.

2022~2023시즌에는 같은 경기에서 6만2083번으로 4736번이 줄었습니다.

위르겐 클린스만 전 한국 대표팀 감독과 이강인. 알라이얀=뉴스1

한국 대표팀이 거꾸로 크로스를 이렇게 사랑했던 건 ‘제일 쉬운 공격 전술’이었기 때문일 겁니다.

세밀한 작전 지시가 없을 때는 크로스가 제일 무난한 선택이니 말입니다.

크로스는 또 패스를 ‘배달’하는 선수만큼 받는 패스를 받는 선수 기술이 중요한 전술이기도 합니다.

세계적인 공격수 출신인 클린스만 감독은 어쩌면 ‘아, 왜 저걸 못 넣지?’라고 생각하고 말았을지 모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을 무능한 지도자라고 부릅니다.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