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훈상 정치부 차장
‘너나 나오지 말라’는 국회의원들의 내년 총선 불출마 논란을 보고 있자니 그가 떠올랐다. 35세 청년, 소방관 출신 더불어민주당 오영환 의원이다. 그는 올해 4월 10일 내년 총선을 딱 1년 앞두고 불출마 선언을 했다. 당시 오 의원은 “부족함을 인정하고 내려놓을 용기를 냈다. 정치에서 계속 역할을 해야 한다는 오만함도 함께 내려놓는다”고 했다. 현장 소방관으로 돌아가겠다는 선언이었다. 지금 불출마 거론 대상자들은 용기는커녕 한 줌 권력을 놓치지 않으려 아등바등하고 있다.
오 의원에게 안부 전화를 걸었더니 국립대전현충원에 가는 길이라고 했다. 그는 15일 현충원에서 열린 소방공무원 합동안장식에 참석했다. 이날 1994년 9월 1일 이전에 순직한 주만균 이성우 박상욱 강한얼 박찬희 최민호 이민기 조남익 등 소방관 8명의 안장식이 거행됐다. 오 의원이 대표 발의한 국립묘지법 개정안이 2월 국회에서 통과되면서 1994년 이전에 화재 진압과 인명구조 활동 중에 순직한 소방관도 현충원에 뒤늦게 자리를 찾게 됐다. 오 의원은 안장식에서 “국회의원으로서 마지막 순간까지 국민 안전과 소방관의 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오 의원이 먼저 전화를 걸어온 적이 있다. 불출마 선언 한 달 전인 3월 6일 오후 11시경이었다. 전화 너머로 울먹이는 목소리가 들렸다. “전북 김제에서 어린 소방관이 사람 구하러 불길에 뛰어들었다가 순직했어요….” 그는 바로 눈앞에서 후배 소방관을 잃은 듯 비통해했다. 그가 불출마 고민을 시작한 것도 그날 밤부터였다. 오 의원은 대형 창고 화재 참사를 대비하기 위해 불이 잘 붙는 샌드위치패널 금지법을 통과시켰다. 대형 화재를 예방하기 위한 화재예방법, 화재조사법도 제정했었다. 최선을 다했음에도 소방관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그의 어깨를 눌렀다.
오 의원은 2008년 여름 현장 소방관 시절 부산 해운대해수욕장에서 통제선 멀리 떠내려가 파도에 가라앉던 한 여자아이를 직접 구조했다. 살고자 하는 강력한 의지가 담긴 따뜻한 아이의 손이 잊혀지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죽음과 공포의 위기로부터 소중한 생명을 구해본 사람은 평생 그 중독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했다. 지금 불출마 거론 대상자들은 무엇에 중독돼 내려놓지 못하는지. 국민이 따져 물을 때다.
박훈상 정치부 차장 tigermas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