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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교과서 논쟁 “맞춤형 학습 가능” vs “독해력 해칠수도”[인사이드&인사이트]

입력 | 2023-11-20 23:30:00

2025년부터 단계적 도입… 2028년까지 초3∼고1 도입
“AI 기반 수준별 학습 가능”… “성취도 낮으면 고립” 우려도
디지털 너무 의존하면 부작용… 영유아 사교육 시장도 들썩
전문가들 “종이 교과서도 중요… 디지털-아날로그 균형 맞춰야”



인도의 에듀테크 기업 ‘서드 스페이스 러닝’과 영국의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UCL) 교수진이 개발한 인공지는(AI)튜터를 활용해 수업하는 모습. 영국 1200여 개 초등학교에서 도입 중이다. 서드 스페이스 러닝 홈페이지 캡처

박성민 정책사회부 기자


경기 하남시에서 4, 7세 남매를 키우는 워킹맘 정모 씨(39)는 최근 자녀들에게 태블릿형 학습기기를 구독시킬지 고민에 빠졌다. 이는 한글 단어나 영어 발음 공부, 간단한 덧셈 뺄셈 등을 혼자 모니터를 보며 학습하는 디지털 기기다. ‘인공지능(AI) 맞춤형 교육으로 학습 효율을 높여 준다’, ‘놀이를 통해 한글 수학 영어를 배울 수 있다’는 홍보 문구에 솔깃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사용 중인 또래 친구도 많아서, 안 쓰면 우리 아이만 뒤처질 것 같은 불안감도 컸다. 정 씨는 결국 유명 업체 두 곳의 기기를 일주일씩 무료 체험하기로 했다.

정 씨가 이런 고민을 하는 데는 정부가 2025년부터 도입하기로 한 ‘AI 디지털 교과서’ 영향도 크다. 교육부의 발표대로라면 큰아이는 초등학교 3학년이 되는 2년 뒤부터 수학, 영어 등의 과목을 종이 교과서 대신 AI 기능 등이 접목된 디지털 교과서로 배우게 된다. 정 씨는 “아이가 새 교과서에 적응하려면 미리 디지털 기기에 익숙해져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 2025년부터 AI 디지털 교과서 도입

정부는 2028년까지 초등학교 3∼6학년, 중학교, 고교 공통과목에 AI 디지털 교과서를 도입하는 것이 목표다. 개별 학업성취도에 따른 맞춤형 학습을 제공하고, 교육 격차를 줄이려는 취지다. 가상세계(메타버스), 대화형 AI 등을 접목한 학습 콘텐츠를 태블릿 등 디지털 기기로 공부하게 된다. AI가 개별 성취도를 파악해 학습 속도가 빠른 학생에겐 심화 과정을, 느린 학생에게는 보충 학습을 제공한다. 발달단계를 고려해 대면 학습이 중요한 초등학교 1, 2학년과 사회성 및 정서 함양이 강조되는 도덕, 음악, 미술, 체육은 종이 교과서를 그대로 쓸 계획이다.

해외 여러 국가도 교실의 디지털화를 서두르고 있다. 영국의 ‘서드 스페이스 러닝(Third Space Learning)’은 AI 튜터가 학생의 학습 진도를 실시간으로 점검해 교사에게 전달하는 시스템이다. 유럽의 디지털 강국 에스토니아는 2018년부터 모든 학교에 디지털 교과서를 도입했고, 맞춤형 학습자료를 제공하는 e-솔루션(Opiq·e-schoolbag)을 활용 중이다.

디지털 전환에 늦었다는 평가를 받아 온 일본도 2019년부터 ‘기가(GIGA) 스쿨’ 정책을 통해 학생 1인당 1대의 스마트기기 도입을 추진 중이다. 저마다 형태는 조금씩 다르지만, 학생별로 최적의 학습 콘텐츠를 제공해 교육의 질을 높인다는 목표는 같다.

● 맞춤형 학습, 학생 따라 효과 달라질 수도
하지만 디지털 교과서의 효과에 대한 기대만큼 ‘디지털 만능론’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국가교육과정을 바탕으로 교과서 채택에 기준이 엄격한 한국과 달리, 미국 유럽 등은 교과서 선택이 자유로운 편이다. 이들 나라에선 정식 교과서라기보단 수업 능률을 높이는 ‘디지털 교재’ 개념으로 학교나 교사가 이를 자유롭게 활용하는 편이다.

하지만 정부가 도입하려는 디지털 교과서는 보조 도구가 아니라 기존 교과서를 대체하는 개념이다. 김성천 한국교원대 교수는 “시대가 변하고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디지털교과서도 필요하고, 학습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서도 “기존 교과서의 보완재 개념이 아니라 모든 걸 디지털로 바꾸려는 시도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디지털 교과서의 가장 큰 장점으로 꼽히는 ‘맞춤형 학습’ 효과에 대한 기대도 엇갈린다. 학습 동기가 충분한 학생들에겐 다양한 자료 활용과 검색 등으로 수준 높은 학습이 가능해지겠지만, 그렇지 않은 학생에겐 AI와의 개별학습이 큰 효과가 없다는 것이다. 학교 현장에선 성취도가 낮은 학생들은 오히려 수업에서 고립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박제원 전주 완산고 교사는 “디지털 교과서가 기존 교과서보다 학습 효과가 떨어진다는 연구 결과도 많다. 학습 능력이 떨어지거나 배경지식이 부족한 학생은 오히려 학업에 대한 흥미를 잃게 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전문가들은 디지털 교과서 도입 뒤 혼란을 줄이려면 이런 학습 소외 계층을 줄이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특히 모든 학생이 디지털 교과서와의 소통에만 의지하게 되면, 교사와 학생 또는 학생과 학생 간의 상호작용이 줄어들 가능성도 있다. 김 교수는 “아이들이 서로 자극받고 협업하는 과정도 학습의 중요한 부분인데, 디지털화가 ‘개별화’에만 초점을 맞추게 되면 이런 효과가 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박주형 경인교대 교육학과 교수는 “디지털교과서가 교사의 수업을 완전히 대체할 순 없다”며 “수업에서 소외된 계층, 성취도가 낮은 학생들에겐 교사가 더 주도적으로 개입해 상호작용을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 “디지털 콘텐츠, 문해력 저하” 우려도

‘디지털 과몰입’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글자보다 ‘고자극’을 주는 시청각 자료에만 익숙해지면서 문해력과 주의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서 만 15세 학생들의 읽기 능력을 평가한 결과, 한국 학생들의 읽기 평균 점수는 2009년 539점에서 2018년 514점으로 하락했다. 읽기 영역 분야별 순위도 같은 기간 2∼4위에서 6∼11위로 떨어졌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의 2021년 초중고 교원 1152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응답자의 73.0%(중복응답)는 문해력 저하의 가장 큰 원인으로 ‘유튜브 등 영상매체 과다 노출’을 꼽았다.

물론 “디지털 교과서가 쇼트폼(15초∼1분 내외의 짧은 영상 콘텐츠)이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기반은 아니다. 디지털 과몰입은 기우일 뿐”이라는 주장도 적지 않다. 이에 대해 박제원 교사는 “진짜 학습이 이뤄지기보단, 검색에만 의존해 깊은 사고나 기억을 방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영훈 가톨릭대 의대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같은 콘텐츠를 책보다 디지털로 읽었을 때 가독성, 문해력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교실의 디지털화 여파가 영유아까지 내려오는 것도 문제다. 직접 책을 읽어 주는 대신 모니터 속 한글, 숫자에 집중하는 영유아를 보며 대견해하는 부모도 적지 않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때 보이는 ‘수동적인 집중력’과 학습에 필요한 ‘적극적인 집중력’을 구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배승민 가천대길병원 소아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디지털은 시청각 외에 다른 자극은 받지 못한다. 아이들은 미세한 근육 변화, 표정 변화를 보며 사회성을 키우는데 영상 매체를 멍하게 바라보는 것만으로는 사회성 및 뇌 발달에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 디지털 교과서, 대체재 아닌 보완재
스웨덴은 올 8월 유치원에서 디지털 기기 사용을 의무화했던 기존 정책을 백지화했다. 앞으로는 6세 미만 아동의 디지털 기기 활용 교육도 중단할 계획이다. 대신 책 읽기와 종이에 글을 쓰는 교육을 강화하기로 했다. 스웨덴 정부와 교육계가 학생의 디지털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문해력이 저하됐다고 판단한 결과다. 캐나다 온타리오주도 필기체 쓰기 수업을 17년 만에 필수 과정으로 부활시켰다.

이는 디지털과 전통적 아날로그 교육 사이의 ‘균형’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교육이 익숙한 과거에만 머물러서도, 첨단 기술이 가져올 불확실한 효과에만 의존해서도 안 된다는 교훈이기도 하다. 유네스코는 올해 발간한 ‘교육 분야에서의 기술’ 보고서에서 ‘#TechOnOurTerms’(우리 관점에서의 기술) 캠페인을 제시한다. 보고서의 핵심을 요약하면 이렇다.

“기술은 수백만 명의 학습자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지만, 그보다 더 많은 학습자를 배제한다. 디지털 기술은 교사와의 대면 상호작용을 대체하는 역할이 아니라 보완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박성민 정책사회부 기자 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