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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따라 시작한 ‘축알못’ 아내, 도대표 상비군이 됐다[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입력 | 2023-11-11 12:00:00


5월 14일 열린 경기 남양주시장기 여자축구대회. 진접하나여성축구회 원지영 씨(43)는 사이드에서 깊게 띄워준 볼을 상대 문전에서 머리로 받아 넣었다. 볼이 골네트를 가르는 순간 원 씨는 그라운드를 질주하며 골세리머니를 펼쳤다. 비록 팀은 졌지만 그 순간을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끓어오른다.

원지영 씨가 11월 4일 강원 철원종합운동장에서 볼을 드리블하고 있다. 9년 전 남편 따라 축구를 시작한 그는 주 4회 축구를 할 정도로 빠져 지내고 있다. 축구를 하면서 체중을 감량하고, 체력을 키워 잔병치레를 하지 않는다. 철원=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오른쪽 사이드백으로 활약하면서 간간이 최전방까지 올라가 플레이하는 원 씨는 골을 터뜨리는 순간엔 그가 가장 좋아하는 축구선수 손흥민(31·토트넘)이 부럽지 않다. 회사원인 원 씨는 9년 전 조기 축구에 빠져 있는 남편 이해남 씨(46)를 따라 축구를 시작해 지금은 남양주시를 대표하는 생활 축구 여자 선수로 활약하고 있다.

“남편이 TV로 축구를 보고 있을 때 저도 우연히 지소연 선수의 플레이를 봤어요. 자신감 있게 파고들면서 슈팅을 날리는 모습이 아주 멋있더라고요. 그래서 축구를 시작했죠. 처음엔 퇴근한 남편에게 애들을 맡기고 저녁에 나갔죠.”

광릉여성축구팀(현 진접하나여성축구회)에서 매주 수요일 저녁 7시에서 10시까지 공을 찼다. 공을 처음 차는 것이라 다루기 힘들었지만 너무 재밌었다. 더 잘하고 싶어 밤에 집(경기도 남양주 진접) 근처 경복대 캠퍼스를 찾아 개인 훈련했다. 체력을 키우기 위해 트랙을 달렸고, 기술을 키우기 위해 드리블하고, 벽에 볼을 차며 슈팅 및 패스 능력을 키웠다. 이렇게 3년여 축구를 하다 남편이 회사 일 때문에 주말에만 공을 찬다며 남양주 토요 FC로 옮긴다고 했다. 토요 FC는 매주 토요일 오후 3시부터 5시까지 훈련 및 경기를 한다. 원 씨도 ‘이때다’하며 따라나섰다.

원지영 씨(오른쪽)가 11월 4일 남편 이해남 씨와 강원 철원종합운동장에서 포즈를 취했다. 9년 전 남편 따라 축구를 시작한 원 씨는 6년 전부터 남양주 토요 FC에서 남편과 함께 축구를 하고 있다. 철원=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토요 FC 감독님께 저도 함께 나가도 되냐고 물었더니 나오라고 했죠. 그래서 우리 여성팀에서 저까지 4명이 합류했어요. 그때부터 축구의 기본기를 제대로 배웠어요. 처음엔 남자들하고 경기하는 게 힘들었지만 지금은 재밌어요.”

2003년부터 팀을 이끌고 있는 기업은행 축구선수 출신 유동기 감독(51·기업은행 구리지점장)은 “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했다. 남편도 축구에 대한 열정이 높았다. 팀에 합류한 뒤 열심히 뛰면서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고 솔선수범하고 있다”고 했다. 현재 토요 FC에는 6명의 여성이 참여하고 있다.

11월 4일 강원 철원종합운동장에서 열린 토요 FC 자체 평가전. 원 씨는 최전방 공격수로 나섰다. 여성축구단에선 오른쪽 사이드백을 보지만 토요 FC에서는 주고 앞선에 선다. 원 씨는 이날 골을 잡아내진 못했지만 여러 차례 슈팅도 날렸고, 좌우 사이드로 빠져 볼을 받은 뒤 다시 안쪽으로 찔러주는 협력 플레이를 자연스럽게 했다. 20~25분씩 진행하는 경기 3회를 하고도 지친 기색이 없었다. 그는 “축구 하기 전에는 저질 체력이었는데 지금은 웬만해선 안 지친다”고 했다. 축구 하면서 몸이 완전히 달라졌다. 잔병치레도 하지 않고 감기도 잘 걸리지 않는 강철 체력으로 바뀌었다.

남양주 토요 FC 회원들이 11월 4일 강원 철원종합운동장에서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가운뎃줄 왼쪽에서 세 번째가 원지영 씨. 오른쪽이 유동기 감독.

남편과 함께 하는 축구는 어떨까. 그는 “너무 좋다. 축구 하다 잘 안되면 바로 물어보고 해답을 찾을 수 있다. 둘 다 정신적 신체적으로도 건강하다. 회원들 눈치가 있어 조심스럽지만 주말마다 함께 축구하는 게 즐겁다”고 했다. 토요 FC 유일한 부부 회원이다. 남편은 토요 FC에서 수비수나 골키퍼를 보고 있다.

“초창기 축구 할 땐 ‘여자가 뭔 축구’라는 눈으로 바라봤는데 요즘은 환영하는 분위기예요. 여자들이 공차는 TV 프로그램의 영향인지 주변에 축구 하는 여자들도 많이 늘었어요. 특히 제가 남편이랑 함께 축구 하고 있다면 더 부러운 눈으로 바라봐요.”

원 씨는 남양주시 여자축구 상비군으로도 활약하고 있다. 도 대항 혹은 전국 생활 축구 대회가 있을 때 남양주시 대표로 출전한다. 올해도 경기도지사기 어울림 대회와 경기 도민체전에 출전했다. 팀 성적이 좋지 않지만 남양주시를 대표한다는 자부심으로 열심히 뛰고 있다.

원지영 씨는 주 4회 축구를 할 정도로 축구 마니아가 됐다. 철원=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원 씨는 아파도 축구 훈련에 빠지지 않을 정도로 열정적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오기 전인 2019년이었을 거에요. 온몸이 바늘에 찔린 듯 아팠죠. 감기로 생각하고 축구는 빠지지 못한다며 나갔죠. 결국 너무 아파 응급실에 실려 갔는데 급성 신우신염이라고 하더군요. 의사가 이 몸으로 어떻게 축구를 했냐고 혼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네요.”

병실에서 공을 차기도 했다. 그는 “한번은 딸이랑 놀아주다 넘어져 연골판이 찢어져 입원했을 때 딸에게 축구공 가져오라고 해서 병실에서 볼 트래핑 연습하다 간호사에게 혼난 적도 있었다”고 했다.

처음은 두 딸이 엄마의 부재를 걱정했는데 이제는 응원해주고 있다고 했다.
“아이들이 ‘엄마 또 운동 가?’라는 반응이었죠. 아무래도 엄마가 없으면 불안하겠죠. 그런데 이젠 ‘엄마 조심해서 운동하세요’라고 응원해줍니다. 고2, 중2라 상급학교 진학으로 바쁠 때지만 엄마 아빠가 즐겁게 축구 하는 것을 좋아해 주고 있어요.”

원지영 씨(가운뎃줄 왼쪽)가 참여하는 진접하나여성축구회 회원들. 원지영 씨 제공.

원 씨는 대한민국 국가대표 손흥민 이강인(22·파리 생제르맹)을 좋아해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나, 프랑스 리그1 경기를 자주 본다. 국내 여자 선수론 항저우 아시안게임 대표로 활약했던 천가람(21·KSPO)을 좋아한다. 어린 나이에도 최전방에서 많이 뛰면서 저돌적인 플레이를 하는 게 좋단다. 외국 선수로는 EPL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케빈 데 브라위너(32·벨기에)의 플레이를 좋아한다.

원 씨는 요즘은 개인 훈련 빼고 매주 4회 축구를 한다. 토요 FC와 하나여성축구단(수요일 금요일), 그리고 지난해 여성풋살축구팀을 직접 만들어 매주 월요일 저녁 운영하고 있다. 그는 “제가 축구를 하면서 9kg 정도를 감량했다. 운동량이 많아 다이어트에 도움이 된다고 하니까 엄마들이 좋아한다. 그리고 생각보다 우울증을 앓고 있는 엄마들이 많아서 그런 엄마들도 합류해 공을 차는데 너무 좋아한다”고 했다. 그는 “풋살팀 이름을 3XGO로 지었다. 달리자(Go Run), 골을 넣자(Go Goal), 이기자(Go Win). 좀 유치하지만 즐겁게 재밌다 축구 하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했다. 현재 11명이고 계속 회원을 모집하고 있다.

원지영 씨(앞줄 가운데)가 지난해부터 매주 월요일 저녁 운영하고 있는 여성풋살팀. 원지영 씨 제공.

축구는 고강도 운동이다. 공을 차면서 다양한 기술을 써야 하고, 짧고 굵게 달리기도 하면서 장시간 뛰어야 해 에너지 소비량이 많다. 이런 다이어트 효과 때문에 최근 여성 축구인이 늘고 있다.

원 씨는 요즘 ‘여자축구 전도사’를 자처하고 있다. 그는 “9년 넘게 축구를 하면서 심신이 건강해지다 보니 더 많은 여성들이 축구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축구를 즐기며 건강도 챙기고 다이어트도 할 수 있다. 나이도 상관없고 뛰겠다는 열정만 있으면 된다”며 활짝 웃었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