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에 탄약 한 발도 안보낼 것” 슬로바키아, 우군서 정책 변화 예상 헝가리-폴란드 등은 농산물 분쟁 동유럽 이웃들 장기전 피로감 번져
1일 슬로바키아 총선에서 1위를 차지한 친러, 반미 성향의 야당 사회민주당 로베르트 피초 전 총리가 기자회견을 하며 승리를 자축하고 있다. 브라티슬라바=AP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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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 열린 슬로바키아 총선에서 친(親)러시아 성향의 좌파 야당 스메르 사회민주당(SD)이 1위를 차지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이면서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맞댄 슬로바키아는 우크라이나의 강력한 우군이었다. 나토 회원국 중 두 번째로 빨리 전투기를 지원하기도 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 반대’를 내세운 사민당의 총선 승리로 슬로바키아의 대(對)우크라이나 정책에 변화가 예상된다. 여기에 같은 나토 회원국인 헝가리, 폴란드 등 동유럽 국가들을 중심으로 전쟁 장기화에 대한 피로도가 높아지면서 나토 차원의 우크라이나 지원 노선에 균열이 생길 것으로 보인다.
● “우크라이나에 탄약 보내지 않을 것”
피초 전 총리는 그동안 유세에서 “우리는 우크라이나에 단 한 발의 탄약도 보내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우크라이나 나치주의자와 파시스트들이 러시아인들을 살해하기 시작해 전쟁이 시작됐다”며 사실상 전쟁의 책임을 우크라이나에 돌렸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주장해 온 우크라이나 침공 이유를 그대로 반복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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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유럽서 퍼지는 ‘우크라 지원 회의론’
우크라이나 지원에 대한 회의론은 헝가리, 폴란드 등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동유럽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전쟁이 길어지면서 서유럽보다 상대적으로 경제 구조가 취약한 이 지역에 타격이 컸던 데다 최근 농산물 수입 분쟁도 불거진 탓이다.
폴란드와 헝가리에서는 전쟁 이후 우크라이나산 농산물이 자국으로 유입되면서 밀, 해바라기씨유 등의 가격이 하락해 농민 반발이 커졌다. 우크라이나는 전쟁 발발 후 주요 곡물 수출길인 흑해 항구가 폐쇄되자 육로를 통해 폴란드, 헝가리, 슬로바키아 등 인근 나라들로 수출을 늘려 왔다.
유럽연합(EU)은 5월 불가리아, 헝가리, 폴란드, 루마니아, 슬로바키아에 대해 우크라이나산 농산물 수입 제한 조치를 허용했다. 하지만 시장 왜곡이 사라졌다며 지난달 이 조치를 해제하면서 갈등은 커졌다. 폴란드, 헝가리, 슬로바키아는 ‘수입 금지’ 유지 방침을 밝혔고, 우크라이나는 이 3국을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했다. 이런 갈등 속에 폴란드는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이전하지 않겠다고 맞섰고 헝가리 역시 반발했다. 대표적인 반(反)우크라이나 인사인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는 이번 슬로바키아 총선에서 승리한 피초 전 총리에게 X(옛 트위터)를 통해 “애국자와 함께 일하는 것은 좋다. 기대된다”며 축하했다.
CNN은 “전선이 교착될수록 우크라이나에 대한 서방의 지원 의지가 시험을 받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피초 전 총리가) 오르반 총리와 함께 유럽에 또 다른 반우크라이나 목소리를 낼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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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목 기자 tree624@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