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오른쪽)과 최근 전격 경질된 올렉시 레즈니코우 전 국방장관이 지난해 2월 러시아의 침공 직후 다정히 어깨 동무를 하고 있는 모습. 레즈니코우 전 국방장관 X(옛 트위터) 캡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지난해 2월 러시아 침공 이후 처음으로 국방장관을 경질하는 대대적인 개편을 단행했다. 러시아에 대한 대반격이 부진하다는 평가가 나오는 가운데 젤렌스키 대통령은 “전쟁에 새로운 접근법이 필요하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러시아와의 전쟁을 550일간 이끌어온 올렉시 레즈니코우(57) 국방장관을 교체하는 데 따른 혼란과 위험을 감수할 정도로 과감한 쇄신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레즈니코우 장관은 부정부패 의혹에도 시달려왔는데, 우크라이나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나 유럽연합(EU)에 가입하려면 그동안 걸림돌로 작용해온 부정부패를 척결해야 할 필요성도 있다는 분석도 있다.
● 대반격 부진, 부패 스캔들 속 교체
3일 로이터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화상 연설에서 “레즈니코우 국방장관은 550일 이상 전면전을 지휘해왔지만 교체하기로 결정했다”며 “국방부에 새로운 접근법이 필요하며 군대 및 사회 전반과 다른 형태의 상호작용이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우크라이나 지도부 최대 개편(shake-up)”이라고 평가했다. NYT는 “국방장관 교체 결정은 우크라이나가 대반격 시작 이후 남동부에서 천천히 영토를 회복할 때 나왔다”며 우크라이나 대통령실 관계자를 인용해 새로운 리더십의 필요성을 국방장관 교체 요인 중 하나로 꼽았다.
부정부패 문제도 주요 경질 요인으로 거론된다. 미 CNN은 레즈니코우가 부패 스캔들에 직접 연루된 것으로 확인되진 않았지만 여러 의혹이 제기되면서 타격을 입은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우크라이나는 전쟁이 장기화되는 상황에서 서방의 지원 기반을 강화하려면 EU 가입을 달성해야 하지만 뿌리 깊은 비리 관행이 발목을 잡아왔다. 이 때문에 젤렌스키 대통령은 자신을 지지했던 재벌 기업인 이호르 콜로모이스키까지 2일 사기 및 돈세탁 혐의로 잡아들이는 등 부패 척결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부터 정부 전반의 부패 근절을 주요 공약으로 강조해왔다.
● 후임 장관은 크림반도 소수민족 출신
신임 국방장관으로 지명된 루스템 우메로우(41) 국유자산기금 대표는 대(對)러시아 저항운동의 핵심인 소수민족 크림반도 타타르인이다. AFP통신에 따르면 그의 가족은 옛 소련 시절 우즈베키스탄으로 강제 이주했다가 1980년대 후반∼1990년대 초반 타타르인의 귀환이 허용된 뒤 크림반도로 돌아왔다. 타타르인은 13세기 전후부터 크림반도에 정착한 튀르크계 민족으로 18세기 후반 러시아 제국에 크림칸국이 멸망한 뒤 옛 소련의 탄압을 받아야 했다.
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