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원희 초대전 ‘거기 계셨군요’ 老작가 눈으로 본 정치-사회 현상 천 그림-삽화 등 95점 한자리에 “그저 마주치는 문제 표현한 것”
노원희 작가의 신작 ‘아침운동 2023’(왼쪽 사진). 작가는 1999년에도 ‘아침운동’을 그렸는데 당시는 웰빙 열풍이 일면서 건강한 몸을 가꾸는 데 열심인 세태를 다뤘다. 아르코미술관 제공
전시는 1980년대 회화부터 신작, 대형 천 그림, 참여형 공동작업, 신문 연재소설 삽화 등 작품 95점과 기록 자료 39점을 한자리에 모았다. 1980년 소집단 미술운동 ‘현실과 발언’의 창립 멤버로 정치적 억압이 일상을 짓누르던 그 시절 회화부터 환경과 노동 문제를 비롯해 특히 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과 저항을 담은 최근작까지 골고루 만날 수 있다.
● 거기 ‘안’ 계셨군요
전시 제목 ‘거기 계셨군요’는 2010년 노 작가의 메모에서 따왔다. 이 대사는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라스트 왈츠’(1978년) 마지막 장면에 나온다. 영화의 주인공인 그룹 ‘더 밴드’가 마지막 연주를 마치고 공연이 끝났는데도 그대로 앉아 있는 관객들을 보며 “거기 계셨군요”라고 한 뒤 연주를 다시 이어가는 장면이다. 노 작가는 이 장면을 보고 이렇게 생각한다.
“‘현실과 발언’이 해체된 지 20년. 회원이었던 우리 모두 함께 무대 위에 섰다고 가정해 보자. 커튼을 젖혀 보니…. 사람들이 없다. ‘아, 거기 안 계시는군요’.”
● 여자들은 무기를 들고
제2전시실은 작가가 여성으로서 특별히 관심을 가진 젠더 문제를 집중 조명했다.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후 고엽제 피해를 입은 남성이 가정폭력의 가해자가 된 사연을 텔레비전에서 접하고 이를 회화로 그리거나, 여성의 가사노동이 폄하되는 현실에 의문을 제기한다.
20여 년이 지나 미세먼지로 가득한 오늘날의 생활환경을 반영한 새 작품이 탄생했다. ‘인류의 고민’(2018년)은 미투운동이 불붙었던 당시를 그린 작품이다. 가해자로 지목된 인물들의 얼굴을 그려 넣었다가 지웠다. 아르코미술관 제공
김민 기자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