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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아과 탈출 학술대회’ 연 의사들 “보톡스 공부”

입력 | 2023-06-11 22:18:00

[위기의 필수 의료]
“소아과 진료로 병원유지 어려워”
800명 모여 ‘돈되는 치료’ 배워



11일 서울 서초구 더케이호텔에서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가 주최하는 ‘소아청소년과 탈출을 위한 제1회 학술대회’가 열렸다. 소아청소년과 대신 수익이 높은 다른 과목을 고려하는 회원들을 대상으로 성인병 진료, 보톡스 시술 등에 대한 강의가 진행됐다. 강의 화면에 ‘하지정맥류’라는 문구가 보인다. 이문수 기자 doorwater@donga.com


“다리에 생긴 피부염이 잘 낫지 않는다면 정맥류를 의심해봐야 합니다. 특히 40세 이상 여성에게서 발병 확률이 높습니다.”

11일 오후 서울 서초구 더케이호텔 세미나실. 서울에서 흉부외과 의원을 운영하는 A 원장이 단상에서 ‘하지정맥류’를 설명했다. 객석을 가득 채운 의사들은 열심히 메모해가며 A 원장의 노하우를 경청했다. 자리가 모자라 강연장 맨 뒤 임시 의자에 앉은 의사도 있었다. 여느 의료 학술대회와 다르지 않은 광경이었지만 하나 주목할 만한 점이 있었다. 객석의 의사들은 흉부외과가 아니라 전부 ‘소아청소년과(소청과)’ 전문의였다.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가 연 이날 학술대회 명칭은 ‘소아청소년과 탈출(노키즈존)을 위한 제1회 학술대회’였다. 어린이 진료로는 병원 유지가 힘든 소청과 전문의들이 다른 진료과목을 배우는 자리다. 소청과 내용 대신 ‘고지혈증 1타 강사의 족집게 강의’ ‘바로 적용하는 보톡스’ 등 소위 ‘돈 되는’ 과목 관련 강연이 이어졌다. 여기에 소청과 전문의 800여 명이 몰렸다. 경기 파주에서 소청과를 운영 중인 A 씨는 “‘10년 뒤에도 소아 환자들을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강연을 찾았다”고 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소청과 개원의 연봉(평균 1억875만 원)은 모든 진료과 중 가장 낮았다.





“소아과 환자수 하루 10명 안팎… 보톡스 시술로 전업 생각”




소아과 탈출 학술대회
초저출산 추세에 환자 수 급감
비급여 적어 진료비 최하위 수준
소아과 의사 20% 간판 바꿔 일해




“(보톡스 시술로) 의미 있는 수익이 창출된다면 소아청소년과(소청과) 간판을 내리고 완전히 ‘전업’할 생각도 있습니다.”

11일 ‘소아청소년과 탈출을 위한 제1회 학술대회’ 현장에서 보톡스 강연을 들은 B 원장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기자에게 말했다. 그는 서울 구로구에서 15년째 소청과 의원을 운영해 온 ‘베테랑’ 의사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하루 환자 수가 10명 안팎으로까지 떨어지며 소청과 ‘탈출’을 진지하게 고민하게 됐다. B 원장은 “경영난으로 병원이 존폐 위기”라고 털어놨다.






● “간판 바꿔야 할지” 소청과 의사들 고민

이날 학술대회가 열린 강당은 오전 9시 첫 세션 ‘고지혈증 핵심정리’ 강의부터 772석 규모의 객석이 가득 들어찼다. 경기 화성시 동탄신도시에서 10년째 소청과 의원을 운영 중인 C 원장은 “소아과 타이틀을 꼭 유지하고 싶지만 지난 2년간 영업 이익이 거의 없다 보니 수입을 고려하지 않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C 원장은 소청과를 유지하면서 만성질환이나 미용 환자도 추가 진료할 생각이라고 했다. 일종의 ‘부업’이다. 다른 소청과 전문의는 “일부에서 소아과 오픈런 같은 현상도 있지만 독감 유행 등 특정 시기에만 나타나는 현상이고, 대형 병원을 중심으로 환자가 몰린다”며 “동네 의원들은 소아 환자가 너무 적어 병원 운영이 어려운 형편”이라고 덧붙였다.

임현택 소청과의사회장은 이날 강연에 앞서 “우리는 아이들을 좋아해서 소청과를 선택했지만 도저히 우리 과를 운영할 수 없게 돼 이런 학술대회를 기획하게 됐다”며 “몇 년 전부터 정부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지만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고령화와 함께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동네 의원은 늘어나는 추세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에 따르면 올해 1분기(1∼3월) 전국에서 운영 중인 의원은 3만5225개로, 10년 전 2만8328개에 비해 24.3% 늘었다. 반면 같은 기간 소청과 의원은 2200개에서 2147개로 오히려 2.4% 감소했다. 주요 과목 중 의원 수가 줄어든 건 소청과와 산부인과뿐이다.

이미 소청과를 ‘탈출’한 전문의도 적지 않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심평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전국 의원에서 일하고 있는 소청과 전문의 중 20%(3338명 중 667명)는 소청과가 아닌 다른 과 간판을 내걸고 일하고 있다.






● 의사들 중 최하위 연봉… “악순환 반복”

소청과 의원들의 형편이 어려워진 건 기본적으로 초저출산으로 환자가 줄었기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출생아 수는 약 24만9000명이다. 86만 명이 넘었던 1980년의 3분의 1 미만으로 줄었다.

소청과 의사들은 “환자 수는 급감하는데 환자 1명을 봐서 벌 수 있는 돈도 업계 최하위 수준”이라고 호소한다. 소청과 진료는 대부분이 국민건강보험이 적용된다. 비교적 많은 돈을 받을 수 있는 ‘비급여’ 항목도 적다. 예전에는 아이들이 맞는 예방 접종이 비급여 항목이었지만, 최근에는 대부분 ‘국가예방접종’에 포함되며 건보 적용 대상이 됐다. 임 회장은 “아이 1명당 진료비가 1만3000원 안팎인데, 이 정도면 의사 1명이 하루에 환자 100∼200명을 봐야 직원 월급을 주고 병원 유지가 가능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대한아동병원협회 조사 결과 우리나라는 진료비에 대한 소아 가산율이 2∼9% 수준이다. 소아 가산율이란 소아 환자를 진료했을 때 성인 환자 대비 추가로 얹어주는 진료비 비율을 뜻한다. 일본은 소아 가산율이 26∼100%에 달하고, 3세 미만 영아를 야간에 진료하면 진료비를 3∼5배까지 높게 쳐준다. 박양동 아동병원협회장은 “한계에 도달한 아동병원들이 진료를 포기하지 않도록 실질적인 소아 진료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이문수 기자 doorwater@donga.com
이지운 기자 eas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