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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옴파탈’ 이준석… ‘3개월 임시직’에서 여당 대표까지[황형준의 법정모독]

입력 | 2023-04-06 14:00:00

[13화]







2019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극작가 페터 한트케의 희곡 ‘관객모독’. 십수 년 전에 본 이 연극을 떠올린 건 독자들과 소통하는 방법 때문입니다. 신성한 관객에게 물을 뿌리고 말을 걸어도, 그가 연극의 기존 문법과 질서에 저항했든, 허위를 깨려 했든, 모독(冒瀆)으로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현재 법조팀장을 맡고 있는 필자는 정치부와 사회부에서 10년 넘게 국회와 청와대, 법원·검찰, 경찰 등을 취재했습니다. 이 코너의 문패에는 법조계(法)와 정치권(政)의 이야기를 모아(募) 맥락과 흐름을 읽어(讀) 보겠다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가끔 모독도 하겠습니다.

“대표님, 그 ○○랑 일해 본 적 있습니까?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해 A 씨를 당협위원장을 시킨 뒤 총선에 출마시키는 게 어떠냐고 묻자 윤석열 대통령은 이같이 답했다고 한다. 이 전 대표는 “왜요. A 씨만큼 스펙 좋고 멀쩡한 사람 없다고 했더니 윤 대통령은 ‘뭐~ 그 이 새끼는 일도 못 하고…’”라고 윤 대통령의 성대모사를 했다. 윤 대통령이 A 씨를 자주 데리고 다녀서 아끼는 줄 알고 의사를 떠본 것이라고 했다. 이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특징 중의 하나가 주변 사람들 욕을 굉장히 많이 한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이 써본 사람만 믿고 쓰다 보니 주변에 검찰 출신과 ‘윤핵관’만 남아 있다는 취지로 들렸다.

머리가 명석하고 언어 감각이 뛰어난 사람일수록 성대모사를 잘한다. 이 전 대표의 성대모사는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끊임없이 정확한 단어를 구사하며 쉼 없이 이야기를 했다. 지난달 2일 이 전 대표와의 첫 만남에서 느낀 인상은 “IQ가 높다”였다.


● 대통령과 각을 세우는 ‘0선 중진’

지난해 7월 윤석열 대통령이 3박  5일 동안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 첫 순방을 마친 뒤 경기 성남 서울공항에 도착해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이날 저녁식사 자리에서 이 전 대표는 이문열 작가의 책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들고 약속된 시간보다 10여 분 늦게 모습을 드러냈다. 서점에 책을 사러 갔다가 시간이 좀 걸렸다고 했다. 다음 날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여는 데 회견문을 위해 다시 한 번 읽어보기 위해서라고 했다. 회견문은 머릿속에 어느 정도 정리돼 있기 때문에 술자리가 끝난 뒤 집에 가서 쓸 거라고 했다. ‘일그러진 영웅’이 누구냐고 묻자 말을 아꼈다.

그는 다음 날인 지난달 3일 기자회견에서 “1987년 이문열 작가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통해 그려냈던 시골 학급의 모습은 최근 국민의힘의 모습과 닿아 있다”며 “분명히 잘못한 것은 엄석대인데 아이들은 한병태가 ‘내부 총질’을 했다며 찍어서 괴롭힌다”고 했다. 이어 “국민의힘에서 엄석대는 누구일까요? 엄석대 측 핵심 관계자는 어떤 사람들일까요?”라며 “한 가지 명확한 것은 담임 선생님은 바로 국민이라는 것이다. 당원 여러분의 투표로 이 소설의 결말을 바꿀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전당대회에서 이른바 친윤계 후보를 지원하는 윤 대통령과 ‘윤핵관’을 비판하며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한 이준석계 ‘천아용인’(천하람 허은아 김용태 이기인 후보의 약칭) 후보 지지를 호소한 것이다.

‘친윤(친윤석열)’계가 지원했던 김기현 대표에 대해 이 전 대표는 그날 이렇게 말했다.

“김기현 대표가 마치 윤 대통령과 신뢰가 깊어서 당 대표 후보로 낙점된 걸로 아는데, 전혀 아니다. 약점이 많기 때문이다. 약점이 많아 용산(대통령실)  뜻대로 할 수 있기 때문에 낙점된 것이다.”
                                                                                                              ―취재 메모 중―



● 하버드 졸업생, 정치에 뛰어들다

한나라당 비대위원 시절 26세의 이준석 전 대표. 동아일보DB


그는 서울과학고를 2년 만에 조기 졸업한 뒤 하버드대 컴퓨터과학과와 경제학을 전공한 ‘엄친아’였다. 하버드는 지우개 유명 메이커로나 봤던 이름이었다. 내가 만난 하버드대생은 40여 년 생애 처음이었다. 2011년 12월 당시 한나라당(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었던 박근혜 전 대통령이 그를 발탁하면서 만 26세의 나이에 당시 여당 지도부를 경험했다. 여의도 정치권의 나이로 따지면 그야말로 아이돌이었다.

그는 하버드대 재학 시절 방학 때면 귀국해 무료로 과외 봉사를 했고 졸업 후 저소득층 자녀들을 위해 ‘배움을 나누는 사람들’이라는 봉사단체를 만들었다. 교육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벤처기업 클라세스튜디오도 세웠다.

그는 2011년 12월 한나라당 비대위가 출범하기 사흘 전 비대위원 제안을 받았다. 약 5년 전 봉사단체를 찾아온 적이 있는 박 전 대통령과 한 번 만난 게 전부였다. 당시 비대위에는 ‘경제민주화’의 상징인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전 의원) 등이 참여했고, 비대위는 한나라당에서 새누리당으로 당명을 바꾸고, 정권 실세 및 전직 당 대표 용퇴론 목소리가 나오는 등 쇄신이 진행됐다.

이 과정에서 이 전 대표는 개성을 발휘하며 청년 정치인으로 성장했다. 성 추문과 논문 표절 의혹을 받은 19대 총선 당선인에 대해 출당을 요구하는 등 입바른 소리를 했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 디도스(DDoS·분산서비스 거부) 공격 사건에 대한 ‘디도스 검찰수사 국민검증위’ 위원장을 맡아 주목을 받았다.

2014년 4월 발간한 저서 <이준석이 말하는 ISSUE 25, 어린 놈이 정치를?>에 따르면 19대 총선 공천 과정에선 당시 민주당에서 김근태 전 대표의 부인인 인재근 여사의 도봉갑 출마가 유력하다는 소문을 듣고 무공천을 제안했다.


“김근태 전 복지부 장관이 돌아가시기 전까지 민정당 독재 정권하에서 가해진 고문에 대해 당 차원에서 진정성을 가지고 유감을 표명하지 못했다는 것은 매우 부끄럽다. 이번에 새누리당은 조금 더 과감한 공천을 통해 진정성을 보여야 했다.”
                        ―<이준석이 말하는 ISSUE 25, 어린 놈이 정치를?> 중―


또 여성의 정치참여를 활성화하기 위해 비례대표 중 여성을 5 대 5가 아닌 8 대 2로 공천하자는 주장도 폈다.

40대가 되기 전에 미국에선 흔한 사립 과학고등학교를 세워 이사장을 하는 것이 꿈이라고 썼다. 자신이 받았던 평범하지 않았던 ‘교육의 기회’의 문을 넓혀 가정 등 환경 때문에 기회를 받지 못한 학생들에게 되돌려주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고 싶었던 것이다. 다만 정치인으로 변신하면서 지금 그 꿈은 실현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9년 전 책 내용과 이 전 대표의 현재 모습엔 거리가 있어 보이지만 근본은 같다. 3개월 임시직 비대위원으로 인상을 남긴 이 전 대표는 방송패널 등으로 활동했고 2014년 6월 ‘새누리당을 바꾸는 혁신위원장’을 맡은 뒤 줄곧 정치인으로 살았다.


● 능숙한 메시지 전달 능력과 톡톡 튀는 선거전략으로 급부상

이 전 대표는 메시지 전달과 의사소통에 능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정치 입문 초기부터 이미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 SNS에 자기 목소리를 내며 논쟁에 뛰어들었다. 2019년 바른미래당 최고위원 때 카카오 카풀 서비스 도입에 택시업계가 반발해 갈등이 빚어지자 갈등의 해법을 찾겠다며 택시 기사 자격증을 따고 법인 택시를 몰기도 했다. 이 전 대표와 가까운 인사는 “일단 대단히 명석하고 선거에 대한 이해도 높다. 오세훈 서울시장 보궐선거와 2021년 전당대회, 2022년 대선 등을 보면 선거에서 공략해야 할 타깃 지점이 어디인지를 정확히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합리적 보수를 표방하고 있다. 그간 민주화 세력과 산업화 세력으로 양분된 진보-보수 진영의 구분이 무의미해진 만큼 새로운 이데올로기와 진영의 구분이 재편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어릴 적 싱가포르와 미국에서 대학 생활을 하면서 다소 서구화된 사고를 가지고 있다. 그는 “책임정치를 구현시키기 위해 기득권 정치를 타파해야 한다. 우리의 경우 (국회의원 임기) 4년은 너무 길다. 2년으로 단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통일에 대해선 “통일의 방법이 체제 우위를 통한 흡수통일 외에 어떤 방법이 있을까 싶다. 통일 교육도 필요 없다. 통일 교육은 북한에 있는 사람들이 받아야 한다”고 솔직하게 말한다.

2021년 4·7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선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 캠프 미디어본부장을 맡았다. 2030세대 청년들을 자신의 SNS에서 희망자를 모집해 후보 유세차에서 직접 발언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만들었다. 희망자들은 번갈아 가면서 보통 3~5분가량 발언을 했고 한 번에 40~50명씩 와서 정책 제안을 했다. 그 결과 재보선의 20대 지지율이 75%에 달했다고 한다.

특히 당 대표로 선출된 2021년 국민의힘 전당대회 합동연설회에서 그의 장점이 국민들에게 각인되기 시작했다. 그는 지역마다 맞춤형 메시지를 내며 당원들의 마음을 샀다.

그는 그해 5월 30일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호남 합동연설회에서 5·18민주화운동에 대해 “대한민국 민주화 역사 속에서 (5·18은) 가장 상징적이고 처절했던 시민들의 저항”이라며 “저는 80년 광주에 대한 개인적인, 시대적인 죄책감을 뒤로하고 광주민주화운동의 정신을 자유롭게 체득한 첫 세대”라고 강조했다. 이어 “전당대회를 앞두고 호남 당원이 우리 당원의 0.8%밖에 되지 않는다는 데이터가 공개됐다. 노력해야 한다”며 “(호남 당원은) 그동안 왜 배척받았나. 당내 큰 선거를 앞두고 일부 강경 보수층이 목소리가 크다는 이유로 두려워하며 그들이 주장하는 음모론과 지역 비하와 차별을 여과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제 적극적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며칠 뒤 대구 합동연설회에선 “박 전 대통령이 저를 영입하지 않았다면 저는 이 자리에 서 있지 못했을 것”이라면서도 “저는 제 손으로 만드는 데 일조한 박 전 대통령이 호가호위하는 사람들을 배척하지 못해 국정 농단에 이르는 사태가 발생하게 된 것을 비판하고, 통치불능의 사태에 빠졌기 때문에 탄핵은 정당했다고 생각한다”고 소신 발언을 했다.

한국 정당사상 최초 30대 당 대표라는 기록을 남긴 이 전 대표는 전당대회에서 당선된 뒤 2022년 지방선거에서 공천 자격시험을 도입했고 토론배틀로 당 대변인과 상근부대변인을 2명씩 선출하는 등 신선한 아이디어를 정치권에 접목했다.

이 전 대표는 또 전략가이기도 하다. 2030세대, 특히 2030 남성층과 국민의힘의 전통적 지지층인 60대 이상 노년층을 묶어 더불어민주당의 주요 지지기반인 40, 50대 중장년층을 포위해 지지세를 압도하겠다는 ‘세대포위론’을 내세우기도 했다. 이는 2021년 서울시장 선거와 전당대회에서 성공한 전략으로 평가를 받았다. 그는 이미 ‘내각 30% 여성할당제’ 폐지, 군가산점제 부활 등을 주장하며 안티 페미니스트로 자리잡으며 ‘이대남(20대 남성)’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었다.

이 같은 세대포위론은 윤 대통령이 국민의힘 대선 후보로 선출된 뒤 반문재인 세력을 결집해 정권교체를 이뤄내겠다는 윤석열 캠프의 선거전략과 충돌했다. 이 전 대표와 친윤 간 갈등의 출발점이었다.

매력적이지만 치명적이어서 멀리하고 싶은 ‘옴파탈’ 같다. 적이 많은 ‘트러블 메이커’라는 평가도 받는다.

그가 닮고 싶어하는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보다는 아직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모습에 가까운지도 모른다.



법정모독 14화에선 이준석 전 대표의 향후 정치적 행보와 정치인으로서 아쉬운 점에 대해 좀 더 다뤄볼 예정입니다. 이 전 대표는 늘 논란의 중심에 서 왔습니다. 논리정연하고 토론배틀에선 잘 지지 않기 때문에 싸움을 걸면 되로 받아치는 ‘쌈닭’입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과 이 전 대표가 반대편에서 토론배틀을 한다면 상당히 명장면이 될 것 같습니다.

그간 소통을 게을리 한 측면이 있습니다. 댓글을 남기시거나 e메일을 주시면 이 전 대표에 대해 궁금한 점 등을 다음 화에 다뤄보겠습니다.



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