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1막에서 유령(오른쪽·조승우)이 크리스틴(손지수)과 넘버 ‘The Phantom of the Opera’를 부르며 오페라하우스의 지하 미궁으로 향하고 있다. 노를 저어 가는 몽환적인 무대 연출이 백미로 꼽힌다. 에스앤코 제공
‘오페라의 유령’ 한국어 라이선스 공연이 4차례의 프리뷰 공연을 거쳐 지난달 30일 개막했다. ‘오페라의 유령’은 1986년 런던 웨스트엔드에서 초연된 이후 전 세계 188개 도시에서 관객 1억4500만 명을 모은 대작이다. 프랑스 작가 가스통 르루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작곡가 웨버가 뮤지컬로 재탄생시켰다. 뉴욕 브로드웨이에서는 1988년 첫선을 보이며 최장기간(35년) 공연된 작품으로 꼽힌다. 한국어 공연은 2001년 초연, 2009~2010년 재연 이후 13년 만이다.
조승우가 맡은 유령 역은 흉측한 얼굴을 가면으로 가린 채 오페라하우스 지하에 숨어 사는 천재 음악가다. 신인 여가수 크리스틴을 향한 사랑이 이뤄지지 않는 데서 느끼는 증오와 연민 등을 표현하는 것이 관건이다. 조승우가 7년 만에 도전한 새 뮤지컬 배역이다. 그가 2013년부터 10년간 출연한 뮤지컬 작품은 ‘지킬 앤 하이드’, ‘맨 오브 라만차’, ‘스위니토드’, ‘헤드윅’ 등 4개뿐이다. 조승우는 2001년 한국어 공연 초연 당시 최종 오디션까지 봤으나 영화 ‘후아유’ 촬영 일정이 겹치며 결국 무대에 오르지 못했다. 이번 부산 공연에서 조승우가 출연하는 회차는 전부 매진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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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40여 명이 다채로운 옷을 입고 다함께 노래하며 춤추는 2막 가면무도회 장면. 에스앤코 제공
유령이 부르는 넘버엔 까다로운 강약 조절과 압도적 성량이 요구되는 만큼 조승우는 여러 전문가들을 만나며 최적의 목소리를 연구했다. 이번에 같은 배역을 맡은 김주택과 전동석은 각각 베르디국립음악원과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성악을 배운 정통 클래식파 출신이다. 서울 공연에서 합류하는 최재림 역시 학부에서 성악을 전공했지만 조승우는 연기 전공자다. 신동원 에스앤코 프로듀서는 “조 배우는 자기만의 색이 담긴 유령을 찾아내고자 공연 확정 직후부터 개별적으로 발성법과 목 관리법을 바꿔보는 등 치열한 고민을 거듭했다”고 말했다.
연륜에서 우러나오는 무게감 역시 유령 역을 표현하는 데 일조했다. 원작에서 유령은 20대인 크리스틴과 나이 차가 많은 40대 안팎의 남성으로 묘사된다. 조승우(43)는 역대 국내 유령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다. 초연 유령을 맡았던 배우 윤영석과 김장섭은 당시 각각 30세, 34세였고 재연에서의 양준모, 홍광호 모두 한참 젊은 20대 후반이었다.
‘오페라의 유령’은 오리지널 제작사가 캐스팅 과정 처음부터 끝까지 참여해 배우를 까다롭게 뽑기로 유명하다. 이번 캐스팅도 9개월간의 오디션 끝에 결정됐다. 라울 역은 뮤지컬 ‘레드북’, ‘이프덴’ 등에서 활약한 송원근과 황건하가 돌아가며 연기한다. 무명 무용수가 프리마돈나로 급부상하는 크리스틴 역엔 성악과 출신의 신예 배우 손지수, 송은혜가 발탁됐다. 초연에서 유령 역을 맡았던 윤영석은 극중 오페라 하우스의 운영자인 무슈 앙드레로 돌아왔다.
이번 한국어 공연에서는 1988년 비엔나에서 제작된 오리지널 무대 세트를 만나볼 수 있다. 국내외 스태프 120여 명이 부산에 상주하며 8주에 걸쳐 무대를 준비했다. 에스앤코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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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원 뮤지컬 평론가는 “역대 유령들과 비교해 조승우는 ‘위대한 음악의 천사’이기 앞서 외롭고 상처받은 영혼의 인간적 면모를 잘 풀어내 특별했다”며 “뮤지컬 ‘캣츠’와 더불어 웨버의 전성기를 이끈 작품인 만큼 시대를 뛰어넘는 견고함이 무대를 압도했다”고 평했다.
‘오페라의 유령’은 6월 18일까지 부산에서 공연된 뒤 7월 서울 송파구 샤롯데씨어터에서 공연을 이어갈 예정이다. 부산 드림씨어터 7만~19만 원.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