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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덕 칼럼]‘검찰 특권공화국’에서 독립운동 할 수 있을까

입력 | 2023-03-02 00:00:00

3·1운동 때 국민이 주인되는 나라 원했다
지금 우리는 막강한 특권의 검찰이 주인된
신분제 국가에서 사는 듯한 불안감이 엄습
인사 검증 잘못해 대통령 눈과 귀 가리나



윤석열 대통령이 1일 서울 중구 유관순기념관에서 열린 제104주년 3.1절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 첫 3·1절 기념사는 쉽고 명확했다. “104년 전 3·1 만세운동은 국민이 주인인 나라, 자유로운 민주국가를 세우기 위한 독립운동이었다”고 했다. 목숨 걸고 만세 불렀던 우리 선조들이 염원한 나라는 왕조의 부활 아닌 자유민주주의 공화국이었다.

이토록 당연한 연설이 반가운 이유는 지난 5년간 죽창 들고 외치는 대통령 기념사가 난무했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 연설대로 “우리는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과 연대 협력해 세계 공동의 번영에 기여해야 한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럼에도 이미 독립한 내 나라에서 살고 있는 지금, 막강한 특권의 검찰이 주인인 신분제 국가에서 사는 듯한 불안이 엄습하고 있다. 검찰 출신으로 2월 24일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에 임명됐다 하루 만에 취소된 정순신 변호사 사건 여파다. 물론 윤 대통령은 정순신 아들 학폭 문제에 놀랐는지 학폭 근절 대책을 지시했다. 그 정도로 끝날 일이 아니다. 국민이 검폭(검찰 폭력)에 데인 상처는 훨씬 깊다.

18년을 기다린 송혜교의 학폭 복수극 ‘더 글로리’ 파트2 방영이 코앞이어서일 수도 있다. 8부까지 순식간에 본 시청자들이 전부 송혜교가 돼 시퍼런 칼날을 갈고 있는 판에 대통령이 ‘연진이 아빠’를 수사본부장에 임명한 꼴이어서다.

윤 정부 인사라인은 검찰 출신 공직자 후보를 일반 국민과 다른 기준으로 검증했다. 그것부터 국민이 주인인 나라, 양반·상민 구분 없는 세상을 염원했던 3·1정신에 어긋난 일이었다.

아니라고? 앞으로 인사 검증을 더 잘하면 된다고? 고위공직자 인사 추천과 검증을 하는 대통령실 인사라인이 모조리 검찰 출신 인사 또는 전직 검사다. 전직 검사 한동훈 장관의 법무부에 설치된 인사정보관리단에도 검사 출신이 그득하다. 그들은 상명하복에 능한 데다 하늘을 찌르는 엘리트 의식에 ‘제 식구 감싸기’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종족이다. 일제강점기 우리 민족을 업신여기던 일본인 같다고나 할까. 이런 검찰 출신들이 대통령 주변에 포진하고 있다. 좌우 불문 언론이 아무리 지적해도 대통령조차 문제라고 여기지 않으니 시정이 될 리 없다.

검찰 출신 정순신이 서울중앙지검 인권감독관 때 아들 학폭 송사 벌인 걸 인사 검증 팀에서 몰랐다면 무능이다. 이보다는 정순신이 검찰 출신이어서 검증 팀에서 눈감아줬다 국민 분노가 커지자 “몰랐다”고 했을 공산이 크다. 아니면 지나간 일이어서 그게 무슨 문제냐며 넘겼을 개연성이 크다. 과거 정권을 만들고 보위하던 오만(傲慢) 교만(驕慢) 거만(倨慢)한 검찰에서 대통령까지 나오자 국민이 우습게 보였던 모양이다.

정순신이 국가수사본부장 공모를 철회한다면서 “수사의 최종 목표는 유죄 판결”이라는 발언을 남긴 것도 소름 돋는 일이다. 수사 목표가 진실 규명이 아니라는 수사본부장에게 경찰 수사 지휘를 맡기려 했다니, 잘못하면 생사람이 범인 될 뻔했다.

그의 아들이 학교에서 말했다는 검사의 모습은 더 무섭다. “검사라는 직업은 다 뇌물 받고 하는 직업” “아빠는 아는 사람이 많은데 아는 사람 많으면 다 좋은 일이 일어난다” “판사랑 친하면 재판에서 무조건 승소한다”고 자랑했다고 한다. 다행히도 우리나라에는 검사보다 훌륭한 판사가 있어 아들은 전학을 갔지만 그런 검사의 아들딸들이 ‘아빠 찬스’로 특권을 대물림하는 신분사회가 굳어질까 나는 겁난다.

국민이 검폭에 받은 충격은 너무나 큰데도 대통령실에서도, 법무부에서도 책임진다는 사람 하나 없다. 윤 대통령은 대선 때 “여러분이 만약 기소를 당해 법정에서 상당히 법률적으로 숙련된 검사를 만나 몇 년 재판받고 결국 대법원 가서 무죄를 받았다고 해도 여러분 인생이 절단난다”는 말을 했었다. 내 나라에서 이런 검사를 만나 내 인생이 절단나도 어쩔 수 없다면, 엄혹한 일제강점기와 뭐가 다르다는 건지 모르겠다. 일제 때는 죽을 각오로 독립운동을 하면 일본이 망해서 물러날 것이라는 희망이라도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인사 검증 기능에 구멍이 있다”고 인정하고 책임질 사람이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것이 바른 말이고 “정순신 아들이 임명됐단 말이냐” 하는 사람이 간신이다.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나라들은 ‘책임정치’를 하는 나라들이다. 그 나라들과 연대 협력하기 위해서라도 책임질 검찰 출신들은 책임을 져야만 한다.



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