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를 영화로 읊다]〈53〉술 한 잔 마시는 이유
영화 ‘어나더 라운드’에서 무기력했던 마르틴은 술을 통해 활기를 되찾는다. 엣나인필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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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와 술은 불가분의 관계다. 원나라 방회는 시인 중 술 좋아하지 않은 사람이 없고, 마실 줄 모르더라도 늘 술을 읊는다고 적었다(‘瀛奎律髓’ 酒類). 당나라 백거이는 일찍이 술 마시길 권하는 ‘권주(勸酒)’ 시 연작을 남겼다. 조선 전기 문신 유호인(1445∼1494)은 이를 이어받아 다음 시를 썼다.
백거이의 ‘권주’ 시에는 ‘어느 곳에서든 술 잊기 어려워라’ 외에도 ‘차라리 와서 술이라도 마시는 것이 낫네(不如來飲酒)’라는 제목의 연작시가 더 있다. 이들 시에선 성공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 미끼를 문 물고기나 등불에 다가가다 타버리는 나방처럼 사람을 파멸시킨다며 화를 다스리려면 마음속 칼을 갈지 말아야 한다고 설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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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은 안 마시는 것보다 절제하는 것이 더 어렵다. 그러나 실패에 대한 좌절감과 세상에 대한 분노를 억누르기 어렵다면 술이라도 마시는 편이 낫다. 백거이는 “차라리 와서 술 마시고, 눈감고 몽롱하게 취하는 편이 낫다(不如來飮酒 合眼醉昏昏)”(‘不如來飲酒’ 네 번째 수)라고 했다.
임준철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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