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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회전 규제는 글로벌 스탠더드인가[오늘과 내일/장원재]

입력 | 2023-02-04 03:00:00

이해하기도, 지키기도 어려운 우회전 규제
“너무 복잡해 이해불가” 정책 신뢰 안 생겨



장원재 사회부장


최근 서울 시내에서 우회전을 기다리던 중 사거리 오른쪽에 설치된 우회전 신호등이 눈에 들어왔다. 지난달 경찰이 “우회전 신호등이 설치된 곳에선 녹색 화살표 신호에만 우회전할 수 있다”고 발표한 터라 기다리고 있었는데 ‘녹색 화살표’ 대신 ‘녹색 원’이 나타났다. 순간 당황했다. 녹색 화살표가 아닌데 가도 되나….

나중에 물어보니 필자가 본 신호등은 ‘우회전 신호등’이 아니라 ‘보조 신호등’이라고 했다. 또 경찰이 발표한 ‘우회전 신호등’은 현재 서울에 1개뿐이라고 했다. 시내 곳곳에 있는 우회전 전용 신호등이 우회전 신호등이 아니라는 게 이해가 안 갔다.(찾아보니 몇 년 전에는 경찰도 ‘보조 신호등’을 ‘우회전 신호등’이라고 불렀다.)

도쿄 특파원 시절 차를 운전하면서 애를 먹었던 것 중 하나가 좌회전(한국의 우회전에 해당)이었다. 전방 신호등이 적색일 때 습관적으로 핸들을 돌렸다가 눈총을 받곤 했다. 일본에선 전방 신호등이 적색인 경우 직진은 물론 우회전 좌회전이 모두 금지된다.

그런데 익숙해진 다음부턴 한국보다 편했다. 일본의 좌회전 규제는 간단하다. 신호등이 적색이면 모두 멈춰야 하고, 녹색이면 우회전 좌회전 직진이 모두 가능하다. ‘멈춰’라는 표지판 앞에 잠시 멈춰야 하고, 녹색 화살표 신호등이 켜지면 그 방향에 따라 운전하면 된다.

경찰은 지난달 보도자료를 내고 강화된 우회전 규제를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전방 신호가 적색인 경우 우회전하기 전 의무적으로 일시 정지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우회전 신호등이 설치된 곳에선 녹색 화살표 신호에만 우회전할 수 있다고 했다.

발표를 보고 의문이 생겼다. 전방이 적색이고 녹색 화살표 신호가 들어온 경우 일시 정지해야 하나, 전방이 녹색이고 녹색 화살표 신호가 안 켜진 경우 우회전이 가능한가 등. 여기에 ‘우회전 신호등’과 ‘보조 신호등’의 차이까지 알게 되면서 새로 생긴 규제를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싶었다. 또 현실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의욕이 앞서 섣불리 새 규제를 도입한 것 아닌가 의문이 들었다.(참고로 경찰이 말하는 ‘우회전 신호등’이 설치된 곳은 전국 15곳뿐이다.)

경찰은 지난해에도 우회전 규제를 강화했다. 우회전 후 마주치는 횡단보도에 ‘건너는 사람’이 있을 때는 물론 ‘건너려는 사람’이 있을 때도 일시 정지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건너려는 사람’의 기준으로는 ‘횡단보도 인근에서 주위를 살피는 경우’ 등을 제시했다. 운전자들 사이에선 “독심술이라도 배우라는 말이냐”는 비판이 쏟아졌고 금방이라도 대대적 단속을 실시할 것 같았던 경찰은 조용해졌다.

경찰의 선의를 모르는 건 아니다. 2020년 기준으로 전체 교통사고 보행 사상자 중 10.4%가 우회전 관련 사상자였다. 한국은 미국 캐나다와 함께 전방 적색 신호 시 우회전을 허용하는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여서 우회전 시 사고 위험이 높은 것도 맞다.

그렇다고 국민들이 이해하기도, 지키기도 어려운 규제를 남발해선 안 된다. 필자 주변에도 “우회전 규제가 너무 복잡해 이해를 포기했다”고 말하는 이들이 여럿 있다. 실효성 없는 규제를 남발하는 것보다 꼭 필요한 규제를 정해 시행하고 철저히 단속해야 국가 정책에 신뢰가 생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법무부 등의 업무보고를 받고 “선진국 수준의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게 규제를 과감하게 바꿔 달라”고 주문했다. 지금의 우회전 규제가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지 경찰 스스로 자문자답해 보면 답은 어렵지 않게 나올 것 같다.




장원재 사회부장 peacechao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