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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김진태 “사태 커져 미안”… ‘경제 걸고 모험하는 정치’ 안 된다

입력 | 2022-10-29 00:00:00

‘레고랜드 쇼크 사태 확산’ 귀국한 김진태 강원지사 김진태 강원도지사가 27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로 귀국하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인천=뉴시스


지난달 말 춘천 레고랜드와 관련한 채무보증을 강원도가 철회한 데서 시작돼 국내 자본시장을 마비시킨 ‘레고랜드 사태’에 대해 김진태 강원도지사가 사과했다. 하지만 이미 상황은 사과로 해결될 수 있는 수준을 크게 넘어섰다. 정부가 ‘50조 원+알파’의 막대한 돈을 풀고, 한국은행이 금융권 보유 채권을 폭넓게 사주기로 하는 등 긴급조치를 취했는데도 자본시장은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김 지사는 그제 “본의가 아닌데 사태가 이런 식으로 흘러오니 미안하게 됐다”고 했다. 강원도와 레고랜드 운영사 멀린이 합작한 강원도중도개발공사(GJC)의 2050억 원 규모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지급보증을 철회한 건 잘못된 결정이었다고 인정한 것이다. 올해 12월 15일까지 예산을 편성해 보증채무 전액을 갚겠다고도 했다.

하지만 최우량 대기업마저 신용보증기금 보증 없이 회사채 발행이 어려울 정도로 자본시장이 이미 심하게 고장이 났다. 부동산 시장에도 충격이 퍼져 중소 건설사의 줄부도 사태가 우려된다. 한미 금리 역전과 환율 급등을 막기 위해 기준금리를 올려 돈을 흡수하던 한은은 이번 암초를 만나 통화정책의 스텝까지 심하게 꼬이게 됐다.

레고랜드 사태는 경제 작동원리에 어두운 정치인들의 경솔한 결정이 시장에 얼마나 치명적인 타격을 줄 수 있는지 보여준 사례다. 김 지사가 레고랜드 사업의 재정 부담을 떠안지 않으려고 상식 밖의 무리한 조치를 강행한 데서 사태가 시작됐다. 김 지사가 “정치적 의도는 전혀 없었다”고 하지만 믿는 사람은 많지 않다. 주호영 원내대표가 “채무 이행을 할 수 있는데도 미이행 발표로 불신을 키웠다”고 지적하는 등 여당 안에서도 비판이 나오고 있다.

세계는 지금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상승)과 금융위기가 중첩된 초유의 복합위기를 맞고 있다. 한 치 앞이 안 보이는 불확실성 때문에 작은 실수나 판단 착오도 감당 못 할 사태로 확대되기 쉽다. 재정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섣불리 포퓰리즘 정책을 내놨다가 파운드화 폭락 사태를 맞고 44일 만에 실각한 영국 트러스 정부가 바로 그런 예다. 나라 전체를 뒤흔들 수 있는 민감한 경제문제를 정치적 이해에 따라 도박하듯 결정하는 것은 지금 같은 때에는 절대 금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