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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라도 살아서 나가” “엄마, 키워줘서 고마워요”…안타까운 사연들

입력 | 2022-09-07 21:29:00

6일 경북 포항시 남구의 한 아파트에서 태풍 ‘힌남노’의 폭우 때 지하 주차장에서 실종된 주민 7명 가운데 두 번째 생존자가 구조 되고 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김OO야, 너라도 살아서 나가. 수영 잘하잖아.”

“엄마, 잘 키워줘서 고마워요.”

6일 오전 물이 급격하게 들이차던 경북 포항시 남구 우방신세계타운1차 아파트 지하주차장. 가족에 따르면 수영을 할 줄 알았던 아들 김모 군(15)은 이 말을 남기고 헤엄쳐 입구 쪽으로 향했다. 수영을 못하는 엄마는 아들을 보내고 죽음을 각오한 채 천장 모서리 배관 위에 엎드려 있었다가 오후 9시 41분경 14시간 만에 구조됐다. 천장과 배관 사이에 형성된 에어포켓(산소가 남은 공간) 덕분이었다. 하지만 실종자 중 두 번째로 늦게, 17시간 만에 발견된 아들의 심장은 차갑게 식어 있었다.

제11호 태풍 힌남노가 지나간 7일 오후 군과 소방당국이 경북 포항시 남구의 한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남은 실종자를 찾기 위한 수색을 이어가고 있다. 2022.9.7 뉴스1



● 병원서 ‘우리 아들’만 찾은 엄마

포항의료원에 마련된 경북 포항시 남구 우방신세계타운1차 아파트 지하주차장 사망자 분향소. 뉴시스

7일 경북 포항 북구 포항의료원에는 전날 사망한 채 발견된 실종자 7명의 빈소가 마련됐다. 전날 극적으로 구출된 김모 씨(52)의 아들 김모 군(15)의 빈소도 차려졌다.

전날 극적으로 구조된 김 씨는 체온이 35도까지 떨어지며 저체온증에 시달리면서도 “우리 아들 어딨어?”라며 연신 아들을 찾았다고 한다. 가족들도 먼저 헤엄쳐 나간 김 군이 당연히 생존했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김 군의 아버지는 이날 오전 병원을 찾아 아들의 사망 소식을 아내에게 직접 전해야 했다.


“당신이 마음을 단디(단단히) 먹어야 우리 아(아이) 마지막을 볼 수 있다.”

청천벽력과 같은 남편의 말을 들은 김 씨는 그 자리에서 오열했다고 한다.

김 군은 평소 건강이 좋지 않던 엄마를 유독 따르던 ‘껌딱지 아들’이었다. 김 군 빈소를 찾은 친구 최모 군(15)은 “어머니가 드라이브를 가든, 장보러 가든 같이 따라가던 아들이었다”고 기억했다. 6일 새벽 지하주차장에 있는 차량을 옮기라는 관리사무소 방송이 나왔을 때도 엄마가 걱정됐던 김 군이 먼저 따라가겠다고 나섰다고 했다.

6일 김 군과 함께 냉천에서 물놀이를 하기로 약속했다는 최 군은 “오전 9시에 보기로 했는데 연락이 안 됐다. 계속 문자를 보냈는데 답이 없었다”며 마지막 문자를 하염없이 바라봤다. 빈소를 찾은 친구 정모 군(15)은 “노래방 가는 걸 참 좋아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떨궜다.

● “형, 차 못 갖고 나가겠다” 마지막 전화

6일 경북 포항의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주민 7명이 실종된 가운데 소방당국이 이날 오후 9시41분 50대 여성 생존자 1명을 추가로 구조하고 있다. 2022.9.6 경북소방본부 제공

김 군보다 1분 먼저 발견된 서모 씨(22)는 올 3월 해병대에서 갓 전역한 예비역 병장이었다. 서 씨는 독도에서 근무하는 경찰관 형이 두고 간 차를 물려받았는데 6일 오전 이 차를 옮기러 지하주차장에 갔다가 참변을 당했다. 당시 서 씨의 어머니는 “차 포기하고 그냥 올라와”라는 메시지를 보냈지만 아들의 답은 끝내 오지 않았다. 서 씨 고모에 따르면 서 씨는 사망 직전 형에게 마지막 전화를 걸어 “형, 차를 못 갖고 나가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서 씨는 전역 후 한 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성실함을 눈여겨 본 회사 측이 이달부터 정직원 전환을 결정한 상태여서 안타까움을 더했다. 해병대에서 함께 근무한 A 씨는 “힘들 때 끝까지 웃고 견디며 군 생활을 잘했던 친구였다”고 전했다.

이날 포항의료원에는 40년을 해로한 남모 씨(71)와 권모 씨(65) 부부의 빈소도 마련됐다. 빈소에선 노부부의 아홉 살 손자와 여섯 살 손녀는 “할아버지랑 할머니를 살려내요”라며 빈소에서 울음을 터트려 보는 이들이 눈시울을 적혔다. 권 씨의 동생은 “화장실 두 개짜리 새 아파트를 분양받아 좋아했던 모습이 눈에 선한데 (아직 공사 중이라) 입주도 못한 상태에서 이렇게 됐다”고 흐느꼈다.

일부 유족들은 “막을 수 있었던, 정말 어이없는 사고”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서 씨의 고모는 ”관리사무소에서 ‘차를 빼라’고 방송하지만 않았다면 이럴 일은 없었을 것“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포항=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