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대구 수성구 범어동 우정법원빌딩 앞에 희생자를 추모하는 조화가 놓여있다. 합동 감식반원들이 집중 감식과 수색을 하기 위해 방화 현장으로 들어가고 있다. 대구=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민사소송 1심에서 패소한 용의자가 상대방 의뢰인의 변호사 사무실에 불을 질러 자신을 포함해 7명이 숨지고 48명이 다치는 참사가 그제 대구에서 발생했다. 용의자가 노렸던 변호사는 출장 중이어서 화를 면했지만 사무실을 같이 쓰던 다른 변호사와 직원들이 변을 당했다. 사망자들의 몸에서 자상 흔적과 출혈이 발견돼 방화 직전 칼부림의 공포에 떨었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1심 재판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항소심이나 상고심을 통해 법적 판단을 다시 받아볼 수 있다. 그런데 용의자는 제도적으로 보장된 절차를 무시하고 사적 보복에 나섰다. 그것도 의뢰인을 위해 법적 의무를 다한 변호사를 겨냥해 범행을 저질렀다. 이는 변호사 개인이 아니라 법치주의를 위협하는 ‘사법 테러’다.
상당수 변호사들이 크고 작은 폭언과 협박에 시달리고 있다. 소송 당사자와 가장 가까이에서 일하는 데다 법원이나 검찰과 달리 변호사 사무실은 누구나 드나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제 참사가 발생하기 전에도 용의자가 사무실로 항의전화를 걸어 직원들을 괴롭혔다고 한다. 불이 나자 해당 소송과는 무관한 사람들까지 피해를 입었다. 상시 위협에 노출된 상황에서 어떻게 의뢰인의 이익 보호라는 변호사의 본분을 다하겠나. 억울한 사연을 지닌 사람들은 어떻게 마음 놓고 변호사를 찾아가 도움을 호소할 수 있겠나.
장기적으로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하위 수준인 사법제도에 대한 신뢰도를 꾸준히 높여 나가야 한다. 그래야 법치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어처구니없는 사법 테러를 싹부터 자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