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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패션위크를 홀린 AI 휴먼, ‘틸다’는 이렇게 만들어졌죠”

입력 | 2022-03-01 14:05:00


다음 조건에 해당하는 사람을 찾아보자. 환경과 동물을 좋아하는 17세 소녀.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이 소녀가 스스로를 남녀 성별 구별 없는 ‘젠더리스(Genderless)’로 규정하고, 길거리 문화를 좋아한다면. 당장 주변에서 찾기는 조금 어려워지겠지만 Z세대(1995~2009년 출생)라면 그런 존재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가 인위적으로 조성한 동물원 대신 아프리카의 대자연에서 동물들과 만나고, 디자이너와 협업해 세계 4대 패션쇼에 데뷔했다면…. 고개가 갸우뚱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가 존재하는 공간이 클라우드(가상서버)라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존재일 것이다. 바로 인공지능(AI) 휴먼 ‘틸다(Tilda)’다.

LG AI 연구원이 개발한 틸다는 11~16일(현지시각) 미국 뉴욕에서 열린 ‘뉴욕 패션위크’에서 처음 존재를 드러냈다. 막연한 미래로 생각했던 AI 예술가가 등장했던 순간이다. 20세기 말 데뷔했던 사이버가수 아담을 비롯해 여러 가상인간이 떠오르겠지만 틸다는 그들과 질적인 차이가 있다. 기존 가상인간이 인간 모델이 하는 동작이나 부른 노래 등에 디지털만 입힌 수준이라면 틸다는 스스로 생각하고, 감정을 갖고 그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 같은 능력을 바탕으로 ‘금성이 핀 꽃’ 같은 키워드를 말이나 글로 입력하면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LG사이언스파크 AI추진단(LG AI 연구원의 전신)에서 AI로 구동하는 가상의 인간을 만들어야겠다는 구상을 처음 한 것은 2019년이다. 미국 기업 IP소프트가 만든 어밀리아처럼 AI로 구동하는 가상 인간을 만들어야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기본적인 연구 및 논의가 오가는 수준이었다. 본격적인 AI 휴먼 개발에 착수한 것은 2020년 1월 이화영 상무가 전담하면서부터다.

개발의 첫 단계는 AI 휴먼이 나아갈 목표를 찾는 것이었다. LG AI 연구원은 트렌드에 밝은 젊은 직원들에게 전권을 위임했다. 6개월이 흐른 뒤 그들이 가져온 10분 남짓한 동영상에는 AI 휴먼이 나아갈 미래가 담겨있었다. 결혼식이나 아이의 돌잔치처럼 소중한 순간을 담은 동영상을 AI 휴먼의 감성으로 재편집하거나, 그림을 잘 그리지 못하는 인간과 대화하고 도움을 주고받으며 스케치, 채색 등의 과정을 거쳐 그림을 완성해 가는 식이었다.

목표가 정해지자 개발에도 속도가 붙었다. 두 번째 단계는 타깃 고객층과 AI 휴먼의 외형을 포함한 구체적인 설정을 정하는 과정이었다. 이때 핵심 고객으로 설정한 대상은 LG그룹의 미래 고객이 될 Z세대로 잡았다. AI 연구원은 이들의 수요를 분석해 환경적인 관심이 높고, 소셜 커뮤니케이션이나 메타버스 등을 통한 소통을 선호하고, 협업을 통한 상호작용을 통해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를 바탕으로 ‘AI 휴먼에 의한 영감, 인간 전문가에 의한 디자인’이라는 콘셉이 정해졌다. 또 외형을 디즈니나 픽사 같은 만화 캐릭터처럼 만들 것인지 인간 같은 형태로 만들 것인지 등에 대한 논의도 이뤄진 결과 현재와 같은 모습이 정해졌다.

마지막 세 번째 단계에서는 LG AI 연구원의 초거대 AI ‘엑사원(EXAONE)’을 포함한 기술을 탑재하고, 표현하는 방식을 정하는 과정이었다. 이화영 상무는 이 과정을 “세상에 울림을 주는 방식을 찾아 헤맸다”고 말했다. AI 연구원은 신발 제조사 등 패션 브랜드 등과 만나 논의했으나 결국 그리디어스와 협업해 뉴욕 패션위크에 데뷔하는 방법이 정해졌다.

틸다는 계속 발전하고 있다. 한국어와 영어로 자신이 생각한 내용을 모두 표현할 수 있는 ‘보컬 트레이닝’을 진행 중이다. 조만간 틸다가 그린 ‘그래피티(담벼락에 스프레이나 페인트로 그리는 낙서 예술)’도 선보일 예정이다. 장기적으로는 자신의 생각과 다른 주문을 받았을 때 대안을 제시하고 설득할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도 준비 중이고 이미지뿐만 아니라 음악, 춤까지도 창조할 수 있도록 학습 중이다. LG AI 연구원은 향후 누구나 메타버스 공간에서 완성도가 높아진 틸다의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같은 배경에는 구광모 ㈜LG 대표의 AI에 대한 신뢰와 의지가 있다. LG AI 연구원이 초거대 AI 엑사원에 대한 1억 달러(약 1205억 원) 규모 투자 계획을 보고하며 “AI 투자는 한번이 끝이 아니다. 성과가 금방 나오지 않을 수 있다”고 하자 구 대표는 “아낄 필요 없이 해야 되는 것은 다 하자”고 답한 것으로 전해진다. 구 대표는 취임 초기부터 미래 성장동력으로 AI를 선점하기 위해 선제적인 개발을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홍석호 기자 wil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