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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투 더 퓨처 of 타이거 우즈[장환수의 수(數)포츠]

입력 | 2022-02-06 09:00:00

2000년 타이거가 1980년, 현재, 2026년으로 시간 여행을 한다면?




처음엔 늘 가벼운 호기심으로 시작한다. 일이 점점 커질지 모르고. 역사상 가장 위대한 스포츠 스타는 누구일까. 그야 뭐 타이거 우즈 아닌가. 물론 기자의 개인 의견이다. 위대함을 판정할 단 하나의 수식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종목 특성상 테니스에선 로저 페더러나 노박 조코비치의 우승 독식이 더 심하긴 하다.


어쨌거나 오른쪽 정강이와 종아리뼈가 산산조각 나는 자동차 사고에서 1년도 안 돼 돌아온 우즈가 47세인 올해 부활할 수 있을까. 1975년 12월 30일생이니 만 50세를 넘기는 2026년에 시니어투어를 뛴다면 제2의 타이거 독재시대는 올까. 우상인 잭 니컬러스와 계급장 떼고 맞붙는다면 누가 이길까. 이런 의문들이 줄을 잇는다.


●2000년 언터처블 타이거


우즈의 최고 전성기는 20대 중반인 2000년 무렵이다. 풀타임 3년차인 1999년 8승으로 시동을 건 뒤 2000년(9승)에는 이듬해 봄 마스터스까지 메이저 4개 대회 연속 우승인 타이거 슬램 신화를 썼다. 물론 서른을 넘긴 2006년(8승)을 전후한 시기와 섹스 스캔들에 이은 이혼, 그리고 평생 야차처럼 따라다니는 허리와 무릎 부상을 딛고 복귀해 불혹을 앞둔 2013년(5승) 무렵도 그는 여전히 올해의 선수였다.


마스터스 우승 당시의 타이거 우즈. 동아일보DB

사실 타이거의 업적만 나열해도 A4 용지 한 움큼이 모자랄 정도이니 그런 건 이쯤에서 접기로 하자. 대신 그의 위대함을 입증할 숫자를 찾아보자. 2000년 타이거는 티끌조차 찾기 힘든 무결점 선수였다. 장타자는 보통 쇼트게임이 약하다고 하지만 그에겐 해당되지 않는 말이었다. 오죽했으면 외계인이란 별명이 붙었을까. 다른 선수들이 드라이버를 들 때 우드나 롱 아이언으로 낮게 깔아 치는 미사일(일명 스팅어) 티샷, 송곳 아이언, 찰떡 어프로치, 넣어야 할 때 넣는 퍼트까지 주요 4개 부문에서 3위 밖을 벗어나지 않았다.

티샷 평균 비거리는 298야드로 2위, 페어웨이 안착률은 71.2%로 54위(그때나 지금이나 오른쪽 트러블이 문제)이지만 이 2개의 순위를 합한 토털 드라이브 포인트는 56점(2위+54위)으로 오히려 1위였다. 헤드 스피드는 시속 124마일로 2위, 볼 스피드는 182.2마일로 3위(2007년 통계다. 스피드는 이때부터 측정했다). 스크린골프장 좀 다녀본 아저씨들 눈높이에 맞춰 초속으로 설명하면 헤드 스피드는 55.4m, 볼 스피드는 81.4m이니 감탄만 나온다(우드와 아이언 티샷이 섞인 수치다). 그린 적중률은 75.2%로 1위, 그린을 놓쳤을 때 파 세이브 이상을 하는 스크램블링 능력은 67.1%로 3위, 홀 당 퍼트는 1.72개로 2위다. 무엇보다 빨간 상의를 입는 4라운드 평균 타수는 68.4타(2위)로 숙명의 라이벌 필 미클슨(70.1타)을 압도한다.


타이거 우즈의 라이벌 필 미클슨. 동아일보DB

타이거는 블랙 파워를 앞세운 장타력에 태국 출신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아시아적 섬세함, 그리고 오로지 이기기 위해 길러진 승부근성이 더해져 탄생한 몬스터라는 게 정확한 평가일 듯싶다. 결국 타이거는 2000년 20경기에만 나가 우승 9회(45%), 준우승 4회, 3위 1회, 톱10 17회를 했다. 메이저 대회는 4경기 3승이니 75% 확률이다.





●20세기 전설과의 맞대결


타이거는 거의 모든 것을 이뤘지만 풀지 못한 2개의 숙제가 있다. 니클러스의 메이저 18승(타이거는 15승), 샘 스니드와 타이인 통산 82승을 뛰어넘는 것이다. 다승 신기록은 언제인지 몰라도 기대해볼 수 있겠지만 메이저 승수를 깨긴 이제 힘들어 보인다. 타이거가 그동안 잦은 부상과 스캔들만 없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 대목이다.


메이저 대회 18승 위업을 이룬 잭 니클러스. 동아일보DB

그렇다면 이들 전설과 타이거가 전성기 기량으로 맞붙는다면 과연 누가 이길까. 안타깝게도 이를 판정할 만한 신뢰할 데이터는 없다. 미국프로골프협회(PGA)가 제대로 데이터를 입력한 것은 1980년부터다. 오래된 기사를 찾아보면 스니드는 나무 드라이버를 치던 1930년대 다른 선수들이 200야드를 겨우 넘길 때 홀로 270야드의 괴력을 뽐냈다고 돼 있다. 하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믿기는 힘들다. 지난해 선수들의 평균 비거리는 296.2야드이다. 1위인 브라이언 디셈보는 323.7야드로 27.5야드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 그래도 다행히 스니드의 장타력을 엿볼 수 있는 데이터는 있다. 그는 68세인 1980년에 235.2야드를 쳤다. 초청선수로 나간 3경기 기록이지만 고령을 감안하면 놀라울 따름이다. 당시 1위인 댄 폴은 274.3야드, 평균은 256.5야드. 만약 실제로 스니드가 젊은 시절 동료 선수보다 70야드 가까이 더 쳤다면 그의 손을 들어주고 싶기도 하다. 그러나 외계인이 아닌 이상 이런 통계는 나올 수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

니클러스는 타이거처럼 다방면에 능한 선수였다. 40세로 전성기는 지났지만 2승을 거둔 1980년에 비거리 10위(269야드), 페어웨이 안착률 13위(71.6%), 그린 적중률 1위(72.1%)에 올랐다. 아쉬운 것은 스클램블링과 퍼팅 데이터는 이때 없었다.

그럼에도 타이거가 스니드와 니클러스에 비해 앞선다고 생각하는 근거는 단순 명료하다. 타이거는 경기를 지배하는 부문별 순위 경쟁력에서 전 부문 최상위권에 올라 있다. 골프 산업은 타이거 이전과 이후로 나뉘는데 타이거는 자신이 만든 골프 붐 때문에 전설들보다 몇 배나 심한 경쟁을 뚫고 우승 행진을 이어왔다.






●올해 성적표

드라이버 비거리나 아이언 정확도는 기술 발달로 급속도로 향상돼왔다. 이를 감안하더라도 타이거는 2000년 기량을 갖고 와도 예전 같은 독재는 힘들어 보인다. 그때보다 더욱 경쟁이 치열해졌고, 무엇보다 올해 28세인 존 람이란 괴물이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그동안 타이거의 후계자로 세르히오 가르시아, 아담 스콧, 더스틴 존슨, 로리 매킬로이 등이 거론됐지만 모두 탈락했다. 타이거에 가장 근접했다는 평가를 받은 매킬로이는 히팅 능력에선 여전히 최고이지만 쇼트게임과 꾸준함, 우승 결정력에서 약점을 보였다. 이제 나이도 33세가 됐다.

반면 현 세계 랭킹 1위인 람은 멀티 플레이어다. 지난해 기록을 보면 드라이버 비거리는 19위지만 309야드로 손색이 없다. 정확도를 합한 토털 드라이브 능력에선 1위(80점)다. 2위인 스코티 셰플러(101점)와는 21포인트 차. 프린지를 포함한 그린 적중률 1위(79.1%)이고, 평균 스코어 역시 1위(69.3타)로 2위 존슨에 0.62타나 앞선다. 2016년 PGA 데뷔 후 꾸준히 성적을 내온 것도 강점이다. 스크램블링 능력은 19위(63%), 퍼팅은 25위(1.73개). 아직 걷는 게 불편해 카트를 타고 다니는 현재 타이거로선 1승을 추가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비거리와 정확도 등을 합친 능력에서 세계 최고로 평가받은 존 람. 동아일보DB






●2026년 시니어 무대

챔피언스투어도 결코 녹록치 않다. 베른하르트 랑거가 65세의 나이에도 예전 타이거를 방불케 하는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그는 지난해 나이보다 적은 63타를 쳐 에이지 슈터에 올랐고, 최고령 우승 기록을 갈아치웠다. 시즌 대상인 찰스슈왑컵 포인트에서도 1위에 올라 100만 달러의 보너스를 받았다. 유럽투어에서 42승(통산 2위)을 거둔 그는 시니어 데뷔 첫 해인 2007년부터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우승 행진을 해 지난해 2승까지 젊은 시절과 같은 42승을 올렸다. 7승을 거둔 2017년에 드라이버 비거리는 24위(280.4야드)였지만 퍼팅과 토털 드라이브 포인트 각 1위, 그린적중률 2위를 기록하는 기량을 뽐냈다.





타이거가 시니어 무대에 데뷔할 때엔 랑거가 69세로 은퇴할지도 모르지만 5살 연상인 미클슨과 다시 숙명의 라이벌전을 펼쳐야 한다. 미클슨은 지난해 불과 6경기에 나가 시즌 최종전을 포함해 4승을 거뒀다. 이는 니클러스와 타이기록. PGA투어에서도 메이저인 PAG챔피언십에서 역대 최고령(50세 11개월)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최고령 우승 기록을 보유한 베른하르트 랑거. 동아일보DB




흑인과 백인, 오른손과 왼손, 어퍼컷 세리머니와 엄지를 슬쩍 추켜올리는 답례로 극명하게 대비되는 타이거와 미클슨. 이들의 승부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예전엔 미클슨이 세기의 라이벌인 스니드와 벤 호건, 니클러스와 아널드 파머처럼 타이거와 어깨를 나란히 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젠 타이거가 도전장을 내밀 차례다.




장환수 스포츠전문기자 zangpab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