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서울대교구장 이임미사
염수정 추기경이 30일 서울 명동대성당에서 이임 감사 미사를 봉헌한 뒤 참석자들의 인사를 받으며 성당을 나서고 있다(위쪽 사진). 미사 중 강론하는 염 추기경. 사진공동취재단
“사제로 51년, 주교로 20년을 살아왔다. 9년 반은 교구장이라는, 부족한 제게는 너무 버거운 십자가를 지게 됐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당부하신 양 냄새 나는 착한 목자로서 저의 모든 것을 다 바치려고 했지만 능력이 부족함을 뼈저리게 느꼈다.”
30일 서울 명동대성당에서 열린 천주교서울대교구장 이임 감사 미사 중 염수정 추기경(78)이 남긴 말이다. ‘하느님 뜻에 따라 살고자 노력했고, 부족하지만 열심히 살았던 사제로 기억해주면 좋겠다.’ 가톨릭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염 추기경의 소망대로 그는 부드러운 미소와 겸손함으로 사제와 신자들을 지켜주던 신앙의 울타리였다.
1943년 경기 안성의 순교자 집안에서 태어나 1970년 사제품을 받은 뒤 2002년 주교로 서품됐다. 2012년 정진석 추기경의 뒤를 이어 제13대 서울대교구장에 임명됐고, 2014년 한국의 세 번째 추기경으로 서임됐다.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이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의 시복 미사를 주례할 때 교황과 함께 미사를 공동 집전했다. 손병선 천주교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장은 “추기경의 사목 여정과 순례의 시간이 어제의 열매이자 내일의 씨앗이 될 거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미사에 이은 환송식에서는 염 추기경을 떠나보내는 아쉬움과 신임 교구장에 대한 기대감이 교차했다. 교구의 젊은 사제들은 염 추기경의 ‘애창곡’으로 알려진 성가 ‘나를 따르라’를 열창했다. 30일은 염 추기경의 세례명인 안드레아 성인을 기념하는 영명축일(靈名祝日)로 그 의미를 더했다. 염 추기경은 환송식 답사에서 “안드레아 성인은 ‘나를 따르라’는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아 주님을 따라 나선 첫 사도 중 한 분이고, 오늘은 어머니 기일이기도 해서 도저히 잊을 수 없는 날”이라며 “이날 이임 미사를 봉헌하고 새 교구장님이 오시게 된 것은 성령의 섭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염 추기경의 유머로 대성당 내에서는 웃음꽃이 피기도 했다. “여러분, 제 전화번호는 바뀌지 않고 그대로입니다. 바뀌면 장사가 안돼요. 농담입니다.”
이날 미사 뒤 염 추기경은 명동 주교관을 떠나 사제의 꿈을 키웠던 혜화동 가톨릭대 성신교정 내 주교관으로 거처를 옮겼다. 교회법상 추기경은 종신직이며 염 추기경의 교황 선출권은 만 80세까지 유지된다. 후임인 제14대 서울대교구장 정순택 대주교의 착좌(着座) 미사는 8일 오후 2시 명동대성당에서 봉헌된다.
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