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는 때로 허무맹랑하게 들리지만 상상을 통해 진실을 담는 일종의 그릇이다. 미당 서정주의 산문시집 ‘질마재 신화’에 나오는 ‘신선 재곤이’는 그 그릇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아주 흥미롭게 보여준다.
전북 고창 질마재 마을에 “땅 위에 살 자격이 있다”는 의미에서 재곤(在坤)이라 불리는 앉은뱅이가 살았다. 기어 다니는 모습이 거북이를 닮은 사람이었다. 그는 멍석이나 광주리를 절어 팔았지만 입에 풀칠하기도 힘들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에게 거북이처럼 마을을 돌아다니며 “밥을 빌어먹고 살 권리”를 주었다. 밥도 주고 옷도 주고 불도 주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그가 보이지 않았다. 뭔가 잘못된 게 분명했다. 마을 사람들은 한동안 마음이 무거웠다. 그러다가 어떤 노인이 말했다. “재곤이는 생긴 게 꼭 거북이같이 안 생겼던가. 거북이도 학이나 마찬가지로 목숨이 천년은 된다고 하네. 그러니, 그 긴 목숨을 여기서 다 견디기는 너무나 답답하여서 날개가 돋아나 하늘로 신선살이 하러 간 거여.” 그때부터 재곤이는 신선이 되고 신화가 되었다.
그의 옆구리에 날개를 달아주고 신선으로 만든 것은 질마재 공동체의 양심과 윤리였다. 다 그렇지는 않지만 신화는 종종 이런 식으로 공동체의 진실을 담아낸다.
왕은철 문학평론가·전북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