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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라 통째로 경매 넘기고 보증금 ‘먹튀’ 신종사기 극성

입력 | 2021-06-04 10:26:00

신혼부부 전세보증금 주의보






[GettyImage]



“방 두 칸짜리 신축 빌라 전세가격이 2억500만 원입니다. 제가 책임지고 1억6000만 원에 맞춰드릴게요.”

지난해 3월 결혼식을 앞두고 신혼집을 구하던 이세훈(가명·34) 씨는 공인중개사로부터 솔깃한 제의를 받았다. 집 근처 부동산중개업소에만 전세 매물을 찾아달라고 부탁하면 안 되겠다 싶어 부동산 온라인 커뮤니티에 연락처를 올리자 ‘신축 빌라를 무조건 찾아주겠다’는 공인중개사에게서 연락이 왔다.


임대차 3법에 실수요자 몰리는 신축 빌라


그런데 공인중개사는 다소 상식적이지 않은 얘기를 꺼냈다. 이씨가 물색한 방 두 칸짜리 신축 빌라는 시세가 대개 2억 원 초중반이었다. 하지만 공인중개사는 1억6000만 원에 전세 계약을 체결할 임대인을 소개해 주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임대인과 계약한 기간 중 전입신고를 잠시 늦추면 된다고 설명했다. 전세보증금 1억6000만 원에 전입신고를 공인중개사가 요구하는 날까지 연기하는 조건이었다. 뭔가 석연치 않아 이씨는 거절 의사를 밝혔다.

“이런 일이 있고 나서 주변에 좀 알아보니 전세 사기가 의심된다고 하더군요. 만일 전세 계약을 체결한 뒤 공인중개사 요구대로 전입신고를 늦췄다면, 그 기간에 빌라 건물이 경매로 넘어갈 수 있다면서요. 이 경우 세입자는 후순위채권을 부여받기 때문에 보증금을 회수하기 어렵다고 해요. 정말 일낼 뻔했어요.”

그렇다면 사기범들은 어떤 수법으로 전세보증금을 빼돌리는 것일까. 전형적인 수법은 깡통 전세다. 집주인이 전세보증금을 시세보다 부풀려 세입자와 임대차계약을 체결한 후 불량 임대사업자에게 명의를 넘기는 식이다.



세입자 모르게 바뀐 집주인, 신용불량자


30대 직장인 A씨는 2018년 1월 초 서울 강북구 한 공인중개사무소를 찾았다. 방 한 칸짜리 원룸 주택에서 벗어나 좀 더 넓고 깨끗한 전셋집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공인중개사 B씨가 소개한 방 두 칸짜리 집을 눈여겨봤다. 서울지하철역에서 도보로 10분 거리고 시스템 에어컨과 세탁기 등을 갖춘 신축 빌라였다. B씨는 “건축주가 직접 전세를 놨다. 총 18가구 중 5가구만 전세를 놓아 보증금을 떼일 염려가 없으니 계약을 하라”고 권했다. 임대인 C씨도 이와 비슷한 취지로 말했다. A씨는 이 집 전세보증금 1억2000만 원을 마련하고자 6년간 저축한 돈을 끌어모았다. 그러고도 모자란 4500만 원은 은행에서 청년 전월세 보증금 대출을 신청해 장만했다.

그해 2월 말 입주에 성공한 A씨는 전세 계약기간 종료를 앞두고 보증금 반환을 요구하기 위해 임대인에게 연락했다가 2018년 9월 집주인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확인했다. C씨는 새 임대인 D씨에게 건물을 통째로 무상 양도하면서 전세보증금 채권까지 넘겼다. A씨는 그제야 이 건물의 18가구가 전부 임대인 D씨와 전세 계약을 체결한 상태라는 것을 알게 됐다. 문제는 D씨가 별 다른 수입원이 없고 신용 상태가 불량해 전세보증금 반환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이었다.

법적으로 A씨에겐 이전 임대인에게 전세 계약 해지 통보뿐 아니라 전세보증금 반환을 청구할 권리가 있다. 그러나 집주인 명의가 바뀌는 즉시 A씨가 승계 거부 의사를 밝히지 않아 그마저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세입자가 이를 거부하지 않으면 이전 임대인과 새 임대인 간 채권 승계를 묵시적으로 용인한 것으로 비칠 수 있다. 결국 A씨를 비롯한 18세대 세입자가 모두 하루아침에 보증금을 떼일 위기에 처했다.

B씨와 C씨 범행이 적발된 건 이들이 계약 당시 건물의 전세 비율과 선순위 임차보증금을 고지하지 않은 것이 문제가 됐기 때문이다. A씨를 비롯한 세입자들은 경찰에 이 사건을 신고했다. 선순위 임차보증금은 다가구주택에서 본인보다 앞서 계약한 세입자의 보증금을 일컫는다. 만약 다가구주택이 경매로 넘어가면 선순위 근저당과 선순위 임차보증금을 제한 뒤 본인의 보증금을 배당받게 된다.



‘미분양’을 ‘완판’으로 둔갑


수사 결과 해당 건물은 전세보증금이 매매가격을 웃돌아 전세 계약기간이 끝난 뒤에도 전세금을 반환하지 못하는 ‘깡통 전세’였다. B씨와 C씨의 주장과 달리 다른 임차인과 전세 계약을 체결해도 그 보증금으로 A씨의 전세보증금을 반환하는 게 불가능했다.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B씨와 C씨는 A씨에게 “18가구 중 5가구만 전세 임대이므로 전세 계약을 해도 전세금을 떼일 염려가 없다”는 취지로 거짓말을 한 것이다. 또 A씨보다 전세보증금 선순위인 전세 임차인 현황에 대해서도 고지하지 않았다. 수사기관은 ‘B씨와 C씨가 임차인 18명을 속이고 전세보증금 명목으로 총 21억6000만 원을 편취한 것’으로 판단했다. 현재 두 사람은 사기 혐의로 서울북부지방법원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A씨는 해당 건물이 경매로 넘어가 매각 대금 중 일부를 배당받았으나 전세보증금 상당 금액을 변제받지 못해 여전히 고통을 호소하는 상황이다.

집주인이 여러 차례 바뀌면서 근저당이 설정되거나 명의만 빌려주는 ‘바지 집주인’이 새 임대인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2018년 4월 인천 남구에서 비슷한 사기 사건이 발생했다. 세입자는 1억500만 원을 주고 신축 빌라에 전세로 들어갔다. 그로부터 2개월이 지나 임대인이 이 집을 새 임대인에게 넘겼다. 새 임대인은 이전 임대인에게 명의를 빌려준 대가로 약간의 수수료와 건물을 통째로 넘겨받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전세가격이 매매가격을 웃돌아 사실상 깡통 전세를 떠안은 셈이 됐다. 새 임대인은 부랴부랴 이 집을 담보로 근저당을 설정하고 2000만 원 상당을 빌렸다. 그러고는 자신도 피해자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결국 세입자는 어쩔 수 없이 새 임대인이 빌린 금액을 갚고 원치도 않은 집을 매입했다.

최근에는 건축주와 ‘갭투자’ 하는 임대사업자, 공인중개사가 짜고 조직적으로 신축 빌라를 처분하는 신종 수법도 등장했다. 갭투자는 매매가격과 전세가격 간 격차가 작을 때 그 차이(갭)만큼의 투자금액으로 주택을 매수하고, 시세차익을 노리는 부동산 투자 방법이다. 업계 사정을 잘 아는 부동산중개업자 전언에 따르면, 신축 빌라 분양이 여의치 않자 건축주는 임대사업자에게 빌라 한 채당 2억 원 정도로 건물을 통째로 매각하겠다고 제안한다. 그런데 정작 계약서는 분양가인 2억5000만 원에 매각하는 것으로 작성한다. 공인중개사는 빌라를 각 세대를 2억2000만 원에 계약할 전세입자를 찾는다. 전세입자는 분양가격과 전세가격 차이가 3000만 원에 달한다고 생각하고 계약을 맺는다. 이런 방식으로 건축주는 빌라 분양을 ‘완판’하고, 임대사업자는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집 한 채당 2000만 원 상당의 수익을 낸다. 공인중개사는 집 한 채당 수수료 명목으로 적게는 300만 원, 많게는 500만 원을 챙기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월세 이중계약 맺는 신종 사기 수법도 등장


문제는 전세기간이 만료되는 시점에 이르러서야 발생한다. 서울에서 활동하는 공인중개사 이모 씨는 “세입자의 보증금으로 집을 매입한 갭투자는 다른 세입자를 구하기 전까지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돌려줄 수 없다. 세입자 역시 보증금을 돌려받기 전까지 이사를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한다”고 설명했다.

최근 성행하는 신축 빌라 전세 사기 가운데는 빌라 전체 호실을 전세로 놓은 뒤 건물을 통째로 경매로 넘겨 모든 세입자(9가구)의 보증금을 가로채는 수법도 있다. 구체적 범행 수법을 살펴보자. 공인중개사는 “세입자에게 빌라 건물 전체 시세가 10억 원 상당이고, 등기부등본에는 근저당 채권액이 5억2000만 원 설정됐으므로 전세보증금 반환에는 문제가 없다”고 설명한다. 세입자는 그 말을 믿고 1억 2000만 원에 전세 계약을 체결하고 빌라에 입주한다.

일당인 건물주가 빌라 건물을 통째로 경매에 넘긴 뒤 9가구 전체의 전세보증금을 챙겨 잠적한다. 세입자가 뒤늦게 선순위 임차보증금을 확인해 보니 자신이 전세 계약을 치르기 전 이미 8가구의 전세보증금 총액은 4억7000만 원에 달했다. 해당 건물이 경매로 넘어가면 통상 시세의 60~70% 선에서 낙찰가가 결정된다. 그러나 낙찰가 7억 원에서 근저당 채권액 5억2000만 원을 제외하면 남은 돈은 1억8000만 원뿐이다. 9가구 중 일부 세입자는 사실상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셈이다. 그제야 세입자는 공인중개사와 임대인이 짜고 자신의 보증금을 가로챈 사실을 깨닫는다.

이런 경우 세입자는 어떤 법적 조치를 취할 수 있을까. 김가람 변호사는 “임대인을 상대로 지급명령 신청 및 민사소송을 진행하지만 임대인이 변제할 재산을 마련하기 전까지 보증금을 돌려받기 어렵다. 다만 세입자가 공인중개사의 과실에 대해 책임을 물을 수 있다. 공인중개사와 그가 소속된 공인중개사협회에 형사 고소 및 손해배상 청구를 제기하면 된다”라고 설명했다.

공인중개사는 다가구주택에 대한 임대차계약을 중개할 때 근저당권 및 권리관계뿐만 아니라 매도인, 매수인, 의뢰인 간에 선순위 임차인의 임대차계약서 등의 자료를 발부받아 중개 대상물의 확인 설명서에 기재할 의무가 있다. 공인중계사가 이를 이행하지 않아 피해가 발생한 경우 공인중개사법 제25조에 따라 중개 대상물 확인 설명 의무를 위반한 혐의로 해당 공인중개사를 형사고소할 수 있다. 혐의가 인정되면 500만 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아울러 공인중개사와 공인중개사협회를 공동피고로 묶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도 있다.

최근에는 일명 ‘전월세 이중계약’이라는 신종 사기도 등장했다. 임대인과 월세 계약을 맺은 임차인이 집주인 행세를 하며 새로운 세입자와 전세 계약을 체결하는 방법이다. 이 사기에도 부동산 공인중개사가 핵심 역할을 한다. 20120년 2월 세입자 E씨는 신혼집을 구하기 위해 경기 수원시 공인중개사무소를 방문했다. 공인중개사 F씨의 추천으로 보증금 1억500만 원을 주고 방 두 칸짜리 신축 빌라 전세 계약을 체결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 빌라의 실제 임대인이 따로 있었다. E씨가 전세 계약을 한 사람은 F씨가 내세운 가짜 집주인이었던 것. 심지어 해당 임대계약마저 진짜 임대인 G씨로부터 위임받은 월세 계약을 전세 계약으로 둔갑시켜 보증금을 빼돌린 것이었다. 이런 수법으로 F씨는 부동산거래에 익숙하지 않은 신혼부부나 사회초년생 등을 대상으로 보증금을 가로채다 또 다른 피해자의 신고로 경찰에 덜미를 잡혔다. 현재 F씨는 수원지방법원에서 사기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서울의 또 다른 공인중개사 김모 씨는 “중개 무자격자가 다른 공인중개사의 자격증을 빌려 공인중개사무소를 차리고 월세로 주택 여러 채를 임차한 뒤 가짜 임대인을 내세워 세입자 여러 명과 중복 계약을 체결해 보증금을 가로채는 사기 유형도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에 따르면 불법 중개 피해를 보지 않기 위해서는 공인중개사 이름, 주소, 연락처 등을 확인하고 신분증과 중개업등록증 등의 위조 여부를 공인중개사협회를 통해 확인하는 게 좋다.



공인중개사인 척, 가짜 임대인 세워 보증금 ‘날름’


‘국가공간정보포털’에서 공인중개사사무소가 정상적으로 등록된 업체인지 확인할 수 있다. [국가공간정보포털 캡처]



임대인이 신탁회사에 빌라 소유권을 넘긴 뒤 은행 대출을 받고, 공인중개사와 결탁해 세입자 배당 순위가 신탁회사보다 선순위라고 속여 전세계약을 체결한 후 보증금을 가로채는 수법도 기승을 부린다. 이런 경우 해당 건물이 경매 처분을 밟게 되면 세입자들은 배당 순위가 낮아 보증금을 한 푼도 돌려받지 못하게 된다. 김가람 변호사는 “신탁회사에 넘어가는 건물은 법적으로 신탁회사 소유이므로 위탁자인 임대인의 말을 쉽게 믿어서는 안 된다. 신탁회사에 정확한 사실관계를 문의하는 것이 사기를 예방하는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또한 김 변호사는 “등기부등본을 통해 채무 관계를 확인하고 전세 확정 일자를 받으면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이것만 믿었다가는 꼼짝없이 전세 사기를 당할 위험이 크다”고 강조했다.

신축 빌라 세입자 대상 사기 피해가 빈발하자 경기도와 한국공인중개사협회, 한국감정평가사협회는 서민 주거 안정을 위해 신축 주택의 전·월세 보증금 사기 피해 예방법 홍보에 나섰다. ‘깡통전세 피해예방 상담센터’(hconsult.kapanet.or.kr) 사이트를 개설하고 ‘전세 사기 피해 예방법’ 가이드를 제작해 상담센터 홈페이지를 비롯해 관련 기관 홈페이지에 게재했다. 해당 자료는 계약 전 할 일로 △공인중개사사무소 정상 등록 여부 확인 △임대 물건 건축물대장, 등기부동본, 납세증명서 확인 △임대인 신분증 진위 확인 등을 밝히고 있다. 또 계약 후 할 일로 △계약 당일 계약서 확정일자 받고 전입신고 하기 △임대·전세보증금 반환보증보험 가입 등을 제시했다.



사기단 표적 된 청년층·신혼부부, 세입자 안전장치 마련해야


전문가들은 정부와 국회가 전세 사기 위험으로부터 세입자를 보호할 수 있는 안전장치를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전세난에 내몰려 신축 빌라 등으로 전세 계약을 맺는 사람들은 주로 부동산거래 경험이 적거나 소득이 취약한 청년 층 또는 서민층이 상당수다. 그런 이들이 전세 사기단의 표적이 되고 있다. 청년세대가 ‘부모 찬스’ 없이 독립생활을 시작하고 신혼부부가 아파트 청약을 바라보며 내 집 마련을 도모하는 주택인 신축 빌라에서 왜 이런 피해가 발생하는지 정부가 살펴보고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세사기 #신혼부부 #신축빌라 #신동아


전세 사기 피해 예방법계약 전 할 일

1. 공인중개사사무소 정상 등록 여부 확인하기
국가공간정보포털(www.nsdi.go.kr) 또는 경기부동산포털(gris.gg.go.kr)에서 확인 가능

2. 임대 건물의 건축물대장·등기부등본·납세증명서 확인하기
건축물대장은 정부24(www.gov.kr), 등기사항증명서는 인터넷등기소(www.iros.go.kr), 납세증명서(국세완납증명)는 홈택스(www.hometax.go.kr), 지방세 납세증명서는 위택스(www.wetax.go.kr)에서 확인 가능.

3. 집주인 신분증 진위 확인하기
주민등록증 진위 확인은 정부24(www.gov.kr), 인감증명서 또는 본인서명사실확인서 진위 확인은 정부24(www.gov.kr)에서 가능.

계약 후 할 일

1. 계약 당일 계약서 확정일자 받은 후 전입신고 마치기
계약일 확정받고 전입신고 해야 대항력(일익 0시 효력 발생) 있는 임차인 요건 갖추며 선순위 채권자 지위 확보 가능.

2. 임대·전세보증금 반환보증보험에 가입하기
HUG주택도시보증공사 혹은 SGI서울보증에 보증 가입을 해야 추후 문제 발생 시 보증사로부터 보증금 회수 가능.

[출처: 깡통전세 피해예방 상담센터]


김건희 객원기자 kkh4792@donga.com


〈이 기사는 신동아 2021년 6월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