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단어들의 사전/핍 윌리엄스 지음·서제인 옮김/580쪽·1만8500원·엘리
1915년 7월 10일 옥스퍼드 영어사전 편찬에 참여한 이들이 옥스퍼드대에 모였다. 책임 편집자인 제임스 머리(앞줄 가운데)의 딸 엘시(앞줄 왼쪽)와 로스프리스(앞줄 오른쪽)는 아버지를 도와 편찬에 간접적으로 참여했다. 저자는 이 같은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상상을 가미해 소설을 썼다. 엘리·옥스퍼드대 출판국 제공
그런데 이 사전에 성차별적 표현이 많다는 지적도 있다. 단어 ‘rabid(과격한)’ ‘nagging(잔소리하는)’의 용례로 각각 ‘feminist(페미니스트)’와 ‘wife(아내)’가 소개됐다는 것. 영국 런던에서 태어난 저자는 이 사실에 착안해 상상을 시작했다. 사전 편찬 과정에 여성이 많이 참여했으면 어땠을까. 그 여성들로 인해 성차별적 단어가 바뀌었다면 역사는 달라졌을까. 이 상상은 한 편의 소설이 됐다.
저자 핍 윌리엄스
이후 에즈미는 옥스퍼드 영어사전 편찬을 돕는 조수가 된다. 당시 편집자의 대부분은 남성이었고, 여성은 보통 이들을 돕는 조수로 일했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작업을 곁눈질로 배워 어떤 남성들보다 단어를 골라내는 데 기민한 에즈미는 일을 처리하며 세상의 불합리함을 마주한다. 에즈미는 여성 관련 단어들에 비하적인 표현이 들어 있는 현실과 싸운다. 성차별적 단어들을 조금씩 바꿔 간다.
소설이 오직 상상으로만 만들어진 건 아니다. 저자는 옥스퍼드 영어사전 책임 편집자에 대한 책을 탐독했고 당시 문학 작품과 신문 기사를 뒤졌다. 사전 편찬에 참여했던 몇몇 여성의 이름을 찾았고 그들의 삶을 추적했다. 에즈미라는 허구의 인물이 겪는 이야기가 생생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사전은 영어라는 언어와 마찬가지로 항상 현재 진행형인 작업”이라는 저자의 말처럼 성차별적 단어를 고치는 일은 현재도 계속돼야 하는 게 아닐까.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