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투표율-첫 여성 부통령 의미 크지만 트럼프 현상 만든 불평등 사회구조 여전 ‘샤이 트럼프’ 부각에 양극화 심화될 수도 치유의 시작 아닌 갈등의 시작 될까 우려
신기욱 美 스탠퍼드대 아시아태평양연구소장
트럼프의 선거 결과 불복과 소송으로 혼란이 가중되고 있으나 공화당 지도부는 여전히 침묵하고 있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바이든이 정말 미국의 통합을 원한다면 20년 전 앨 고어 민주당 후보가 플로리다주 개표를 놓고 한 달여간 법적 소송을 할 수 있도록 허용했던 것처럼, 현재 진행 중인 소송 절차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래야 바이든 정부의 정통성을 인정하겠다는 것이다. 따라서 공화당 지도부가 나서서 ‘이제 그만하고 미국을 위해 승복합시다’라고 말할 수 있을지에 향후 정국의 흐름이 좌우될 것이다. 미국의 민주주의가 위협을 받을 때마다 이를 극복했던 당 지도부의 ‘가드레일’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더 큰 문제는 트럼프가 선거에서 패배하더라도 ‘트럼프 현상’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경제적 불평등, 이민 문제, 인종 갈등 등 트럼프를 정치판으로 불러온 사회구조적 요인은 여전히 남아있으며 7000만 표를 모은 트럼프의 저력도 무시하기 어렵다. 사실 현 상황을 가장 정확하게 예측한 것은 언론도 전문가그룹도 아닌 트럼프 본인이었다. 현장 투표 중심의 선거 당일 개표에서는 자신이 이길 것이지만 문제투성이인 우편투표로 인해 승리를 뺏기게 될 것이라고 수개월 전부터 주장하며 선거 불복을 예고했다. 트럼프는 ‘대통령을 결정하는 것은 합법적 투표이지 뉴스미디어가 아니다’라며 바이든 당선을 기정사실화하는 언론을 비판하고 있으며, 2024년 대선 재출마론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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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에게는 트럼프 현상의 기반이 된 백인우월주의를 넘어서면서 동시에 이들을 포용해야 하는 난제가 놓여 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경쟁자였던 힐러리 클린턴을 초대 국무장관에 임명했던 것을 뛰어넘는 파격적인 탕평인사나, 그가 가진 풍부한 정치 경험과 상원 내 인맥을 활용하기를 기대해보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버니 샌더스, 엘리자베스 워런 등 민주당 내 좌파의 압박을 받으며 트럼프를 지지한 우파세력을 포용하는 정책을 만드는 것은 물론 제도적 개혁안을 뒷받침하기도 쉽지 않다. 민주당이 상원을 탈환하는 데 실패했고 하원은 오히려 의석수를 공화당에 내주며, 법인세 인상이나 규제 강화 등 변화를 이뤄내기가 어려울 것이다. 건강보험 확대 등의 개혁안도 6 대 3으로 보수가 우위를 점하고 있는 대법원으로 인해 여의치 않을 것이다.
이번 선거는 120년 만의 최고 투표율을 보였고, 첫 여성 부통령이자 아시아-아프리카계 부통령 선출이라는 역사적 의미를 갖고 있다. 그럼에도 트럼프 현상은 건재하고, 정치적 양극화는 심화되었으며, 미국 사회는 적지 않은 내상을 입었다. ‘샤이 트럼프’는 더 이상 무대 뒤에 숨지 않고 오히려 전면에 나서서 목소리를 낼지도 모른다. 분열과 갈등으로 점철된 트럼프의 미국이 끝났다는 안도감보다도 바이든의 미국 역시 만만찮은 험로를 예고하고 있다.
신기욱 美 스탠퍼드대 아시아태평양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