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독감 백신 유통 과정 문제로 무료접종 사업을 일시 중단한 가운데 23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한국건강관리협회 건강증진의원 서울동부지부를 찾은 시민들이 유료 독감 예방 접종을 위해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2020.9.23/뉴스1 ©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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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플루엔자(독감) 백신 무료 예방접종의 전면 중단을 초래한 ‘백신 상온 노출’은 유통업체의 2차 하청업체가 물량 배송 중 발생한 것으로 파악됐다. 정부는 백신의 낮은 입찰가가 유통사고의 한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지적과 관련해 조달청 등과 함께 입찰방식의 적정성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낮은 입찰가로 여러 차례 유찰이 됐고 이 때문에 배송 일정이 촉박해졌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유통업체인 신성약품의 김진문 대표는 23일 본보와의 통화에서 “수도권과 충청, 강원지역은 1차 하청을 준 업체 S사가 직접 배송했는데 호남 등 일부 지역은 (S사가) 재하청을 맡겼다”며 “재하청 업체가 큰 트럭에서 작은 트럭으로 백신을 옮겨 싣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긴 것 같다”고 밝혔다. 신성약품은 정부와 조달계약을 통해 무료 접종에 쓰일 독감 백신 1259만 도스(dose·1도스는 1회 접종량)를 전국의 병의원과 보건소에 배송하기로 한 업체다. S사가 직접 배송한 물량은 상온에 노출되지 않았다는 게 김 대표의 설명이다. 그는 “재하청 업체를 통해 지방으로 간 물량이 250만 도스 정도”라며 “이 중 일부가 상온에 노출됐을 수 있다”고 했다.
제약업계에선 규모가 작은 업체가 재하청을 통해 백신 배송을 맡다보니 품질관리에 소홀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한 제약사 관계자는 “백신을 운송할 때는 차량 내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장비 등을 갖춰야하는데 재하청 과정에서 운송업체에 대한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 같다”고 했다. 앞서 식품의약품안전처는 7월 ‘백신 보관 및 수송관리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이 지침에 따르면 백신 유통업체는 운송용기에 유지 온도와 시간 등을 기재하고 상시 모니터링을 해야 한다. 하지만 문제가 된 재하청 업체는 이를 제대로 지키지 않고 냉장차 문을 열어놓은 채 작업을 한 것으로 파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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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전국 병원에선 무료 독감 백신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유료 접종을 하려는 시민들이 많았다. 부산 동래구의 한 내과병원에선 무료 접종 대상인 어린이와 노인 17명이 유료로 백신을 맞았다. 병원 관계자는 “유료 접종 문의가 계속 들어오고 있다. 백신 접종 예약건수가 지난해 같은 시기보다 20% 이상 늘었다”고 말했다.
비영리 국제 보건단체인 PATH(Program for Appropriate Technology in Health)가 WHO 자료를 바탕으로 2012년에 작성한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제약사인 사노피, GSK, 크루셀의 독감 백신은 25도 상온에서도 최대 2~4주 동안 품질에 변화가 없었다. 하지만 37도에선 하루 만에 변질됐다.
이소정기자 sojee@donga.com
전주영기자 aimhig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