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년 반이 그 어머니에게는 악몽이었다. 어머니는 처음에는 아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애타게 아들을 기다렸다. 마지막으로 안아주고 입맞춤을 하기 위해서였다. 어머니는 엿새 후에야 아들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어머니가 예상하지 못한 게 있었다. 아들은 총에 맞아 머리가 터지고 온몸이 찢어져 처참한 모습이었다. 어머니가 생각했던 작별의 포옹과 입맞춤은 들어설 자리가 없었다.
악몽도 그런 악몽이 없었다. 하필이면 그날이 자신의 생일이었다. 자신이 떠나온 중동에서는 어머니날이기도 했다. 아들은 매년 3월 21일이 되면 한 아름의 꽃을 안겨주며 어머니를 행복하게 만들곤 했다. 그런 아들이 죽은 것이다.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았다. 어머니는 이후로 생일과 어머니날을 아들이 주는 꽃 없이 보내게 될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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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은 2019년 3월 15일 뉴질랜드의 크라이스트처치 사원에서 백인우월주의자인 범인의 총에 죽은 51명 중 하나였다. 그러나 그 어머니는 희생자의 부모형제를 대표해서 그 말을 한 게 아니었다. 자신의 살을 찢고 나온 아들의 어미로서, 아들과 더불어 죽은 거나 마찬가지인 어미로서 용서한 것이었다. 용서할 수 없는 것을 용서하는 절대적 용서를 실천한 것이었다. 그러면서 자신이 믿는 이슬람이 눈부신 용서와 살람(평화)의 종교라는 것을 보여줬다.
왕은철 문학평론가·전북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