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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 속에 피어난 영원의 세계[이은화의 미술시간]〈120〉

입력 | 2020-07-16 03:00:00


빈센트 반 고흐 ‘영원의 문에서’ 1890년.

머리가 벗어진 백발노인이 불 옆에 앉아 흐느끼고 있다.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운지 푹 숙인 얼굴을 가린 두 주먹 사이로 눈물이 쏟아져 내릴 것만 같다. 푸른색 작업복과 낡은 구두는 그가 짊어진 고단한 삶의 무게를 대변하는 듯하다.

빈센트 반 고흐가 죽기 석 달 전에 완성한 유화다. 당시 프랑스 남부 생레미 정신병원에 입원 중이던 고흐는 그의 삶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잦은 발작과 정신착란으로 의식을 자주 잃었고 건강 상태는 최악이었다. 그 무렵 동생 테오에게 이런 편지를 썼다. “일이 전혀 풀리질 않는구나. 내가 얼마나 많은 슬픔과 불행을 더 겪어야 하는 건지 알 수가 없구나. 이젠 어디로 가야 할지 전혀 모르겠다. 아픈 동안에도 기억을 더듬어 작은 그림을 몇 점 그렸다.”

고흐는 몸과 마음 상태가 바닥을 치는 와중에도 붓은 놓지 않았던 것이다. 병원 안에서는 자연을 마음껏 관찰할 수도, 모델을 구할 수도 없었던 그는 과거 그림들을 토대로 작업했다. 이 그림 역시 1882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제작했던 연필과 석판화 작품을 유화로 다시 그린 것이다. 순전히 기억에 의존해 그렸음에도 구도나 인물 표현이 거의 일치한다. 모델은 참전 용사였던 아드리아뉘스 자위데를란트라는 남자로, 당시 양로원에서 쓸쓸한 노년을 보내고 있었다. “화가는 작품에 자신의 생각을 넣으려고 노력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말했던 고흐. 그렇다면 8년 만에 다시 그린 이 그림을 통해 화가는 어떤 생각을 전하고자 했던 걸까.

그림 제목이 ‘영원의 문에서’가 아니었다면 완전한 절망을 표현한 것으로 해석되었을 것이다. 고흐는 깊은 슬픔과 번뇌에 빠진 노인의 모습을 통해 고통과 죽음을 넘어선 영원의 세계에 대한 믿음을 그리고 싶어 했던 듯하다. 평생 가난과 고독, 고통과 광기 속에 살았던 자신의 삶의 끝도 어쩌면 죽음이 아니라 신과 이어지는 영원의 세계라고 스스로를 위안했던 건 아닐까.
 
이은화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