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과 세종은 음양(陰陽)의 한 묶음이다. 태종이 흘린 피 위에서 비로소 세종이 문화의 꽃을 피울 수 있었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와 함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우광재-좌희정’ 중 오른팔이었던 이광재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당선자는 “노무현 문재인 대통령은 태종 같다. 기존 질서를 해체하고 새롭게 과제를 만드는 태종이었다면 세종의 시대가 올 때가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을 현대판 태종이라고 한다면 적폐청산이란 이름으로 박근혜 이명박 두 직전 대통령을 감옥에 보낸 차가운 면도 함께 연상된다.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이 이 당선자 발언 후 “지난 3년이 파란만장해서 태종처럼 비치는 부분이 있을 수 있지만 태종이라는 형상에만 문 대통령을 가둬둘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어쨌든 지난 3년간 태종의 모습이었다면 남은 2년은 세종의 모습으로 보이도록 보좌하겠다”고 말했다. 또 “차기 대통령이 세종과 같은 일을 할 것이라 본다”면서 문 대통령 임기 후반부와 차기 대통령의 시기를 세종의 시대로 연결했다. 태종의 부정적 측면을 의식해서 말하다 보니 ‘문재인=태종’의 비유보다 한술 더 떠 ‘문재인=세종’의 비유를 한 모양새가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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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준 씨가 2004년 문화재청장 당시 노 대통령을 창덕궁 후원의 규장각으로 안내하면서 “규장각을 만든 정조는 개혁 정치를 추진했고 수원 화성으로 천도하려 했다는 점에서 대통령과 닮은 점이 많다”는 말을 건넸다고 해서 빈축을 샀다. 현직 대통령을 왕조 시대 명군에 비유하는 것만큼 낯간지러운 일도 없다. 그런 비유를 하지 않고는 못 배길 만큼 역사에 대해 아는 체하고 싶다면 대통령이 자리에서 물러난 다음에 해도 늦지 않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