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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가 두른 ‘人의 장막’… 중심 잡을 고언 사라진다[광화문에서/이정은]

입력 | 2020-05-11 03:00:00


이정은 워싱턴 특파원

미국 백악관의 새 대변인인 케일리 매커내니의 등장은 워싱턴 정가의 화제였다. 하버드대 로스쿨을 졸업한 미모의 32세 여성에게 쏟아진 스포트라이트는 화려했다. 417일 동안이나 열리지 않던 백악관 대변인의 브리핑이 재개된다는 점에서도 집중적인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기대는 딱 거기까지였다. 1일 첫 브리핑에서 그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에 대해 “대단하다” “수백만 명의 미국인이 그 리더십에 감사한다”는 등의 발언을 쏟아냈다. 6일 브리핑에서는 트럼프 대통령과 자신을 공격하는 질문이 나오자 언론을 훈계하다가 돌연 질의응답을 중단한 채 나가버렸다. 그는 공화당전국위원회(RNC) 대변인으로 활동하며 ‘트럼프의 여전사’라는 평가를 받았던 인물이다.

대선을 6개월 남겨놓은 임기 후반, 트럼프 대통령의 호위무사들은 이제 도처에 포진해 있다. 백악관뿐 아니라 행정부 주요 보직들도 속속 그의 최측근 인사들로 채워지고 있다. 단순히 친(親)트럼프 혹은 보수 성향으로 평가받는 수준을 넘어 트럼프를 노골적으로 찬양해 온 ‘홍위병’들이 전면에 나서는 형국이다.

최근 상원 인사청문회에 출석한 존 랫클리프 국가정보국장(DNI) 지명자는 지난해 8월 DNI에 지명됐다가 당파적 성향과 경험 부족, 자질 논란에 휩싸여 닷새 만에 지명이 철회된 전력이 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탄핵 위기 당시 자신의 수비수로 맹활약했던 그를 같은 자리에 버젓이 다시 지명했다. 3월 임명된 마크 메도스 백악관 비서실장은 또 어떤가. 공화당 내 강경 보수그룹인 ‘프리덤 코커스’ 의장 출신인 그는 반(反)이민정책 등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시각을 벗어나지 않는 극우 성향의 참모로 평가받는다.

앞서 임명됐던 부처 수장들 중에서는 윌리엄 바 법무장관이 구설에 올랐다. 법무부가 7일 트럼프 행정부의 초대 국가안보보좌관이었던 마이클 플린에 대한 기소를 전격 취하한 것. 플린이 ‘러시아 스캔들’과 관련해 연방수사국(FBI)에 거짓말했던 것에 대해 이미 두 차례 유죄를 인정했는데도 그에게 면죄부를 줘버린 것을 놓고 법률 전문가들조차 “이런 식의 법률 집행은 처음 본다”며 혀를 내두르고 있다. 바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편향된 법률 해석과 꼭두각시 같은 처신으로 전직 직원 1100여 명에게서 공개 사퇴를 요구받은 적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뜻에 순응하지 않는 사람들은 툭하면 터져 나오는 경질설에 시달린다. 이런 인선은 그 밑으로도 줄줄이 연쇄 작용을 미친다. “백악관의 문제를 지적하는 보고서를 썼다는 이유로 경질됐다”고 주장하는 실무자들까지 나오는 판이다.

이렇게 자리를 차지한 참모들은 인사권자의 뜻을 거스르지 않는 보고 내용을 선별하고, 그의 생각에 맞춘 정책을 제안하기 마련. 그 과정에서 사법 정의는 무너지고 정보는 편향되며 대국민 메시지는 왜곡되기 십상이다. 그렇게 인(人)의 장막이 쳐지면 아무리 트위터 등으로 국민과 직접 소통하는 대통령이라도 눈과 귀를 열어놓을 재간이 없다. 트럼프 대통령의 확증편향은 이렇게 심해지고 있다.
 
이정은 워싱턴 특파원 light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