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출처=Pixabay
같은 것을 물었음에도 결과가 정반대였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북침’이라는 낱말이 주는 혼동 때문인 듯하다. 한자에 익숙하지 않은 청소년들은 ‘북풍’과 헷갈렸을 것이다. ‘북풍’이 ‘북쪽에서 불어오는 바람’ 이듯이, ‘북침’ 역시 ‘북쪽에서 침략했다’는 뜻으로 잘못 이해했을 공산이 크다. 북침 해프닝은 설문조사 문항이 바람직하게 구성되지 못해서 초래된 오류였던 셈이다. 우려됐던 ‘민족의 혼 붕괴’와 ‘역사 교육 실패’는 잘못된 통계가 만들어낸 사회적 신기루였다. 이를 근거로 학생들에게 전쟁의 발발과정을 알려주는 교육이 이뤄졌다면 효과 없이 비용만 낭비하는 정책이 되었을 것이다.
통계의 해석과 관련한 문제도 심각하다. 경제통계 가운데 최근에도 오해되고 있는 주제가 바로 구매력평가(PPP, Purchasing Power Parity)를 기준으로 한 국민소득 계산이다. 지난 주 언론들은 ‘구매력’을 기준으로 한 1인당 국내총생산(GDP, 2017년 기준)에서 한국이 4만1001달러를 기록해 4만827달러에 그친 일본을 추월했다고 자랑스럽게 소개했다. ‘실질 구매력 기준으로 우리나라 국민들이 일본 국민들보다 개인적으로 더 부유하다’는 설명을 덧붙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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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의 1인당 실질국내총생산은 한국과 일본에 비해 저조한 수준이다. 그러나 OECD 통계국에 따르면, 같은 시기 대만의 PPP기준 1인당 GDP는 한국과 일본보다 높다. 대만의 물가가 한국과 일본에 비해 상당히 낮은 편이기 때문이다. PPP가 나름대로 역할을 하지만 절대적인 지표가 절대 되지 못하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따라서 PPP기준 1인당 GDP의 의미를 해석할 때는 매우 주의해야 한다.
한국의 PPP기준 1인당 국내총생산이 높게 계측된 이유 역시, 일본 등 주요 선진국보다 낮은 물가수준 때문이다. PPP를 고려하지 않은 1인당 국내총생산을 생각한다면 상황은 반대가 된다. 일본이 4만847달러로, 3만1431달러인 우리나라를 크게 앞선다(IMF, 2019년 명목기준). 한국과 일본 국민이 각각 자국의 1인당 GDP만큼의 현금을 들고 미국을 여행한다고 하자. 일본의 1인당 GDP가 1.3배 더 많기 때문에, 일본 사람이 한국 사람보다 그만큼 더 풍요롭게 여행할 수 있다. 따라서 실제로는 일본이 한국보다 여전히 더 부유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언론보도가 이러한 설명 없이 이루어져, 우리 국민들이 일본을 추월했다고 오인할 경우 많은 문제점들이 발생할 수 있다. 잘못된 통계로 생겨난 허구적 자신감으로 인해, 일본과의 경제 갈등이 적절한 대비책 없이 가속화될 우려가 있다. 예측되지 못한 큰 피해로 돌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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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를 소개하는 언론의 역할도 중요하다. 일반 국민들은 모든 분야에 걸친 전문적인 지식을 갖추기 어렵다. 특히 거시경제 분야에서는 국민소득 등을 계측(measure)하는 절대적인 방법이 없고, 필요에 따라 특정 측면에서의 기준을 선택적으로 차용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기사를 쓸 때, 어떤 개념의 한계점을 철저히 조사해 함께 제시해야 한다. ‘받아쓰는’ 기사 대신 ‘공부하는’ 기사가 필요하다. 언론이 ‘사용설명서’ 없이 보도할 경우, 우리 사회는 마치 브레이크 없이 과속페달을 밟는 것과 같은 위험에 노출된다. 언론은 국민들이 세상을 보는 창(窓)이라 할 수 있다. 국민들이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볼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 지금보다 진화한 보도활동이 필수적이다.
자료는 역사를 바꿀 수 있는 위력을 가진다. 남북한의 경제성과에 대한 오래된 통계에서, 남한은 북한에 오랫동안 뒤쳐져 있다고 나타난다. 이 자료 때문에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남한 경제가 북한 경제를 앞선 것은 빨라도 1970년대 후반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나 이 통계는 사실이 아니다. 북한이 통계를 과장해서 발표했기 때문이다. 서울대 경제학부 김병연·이근 교수와 통일연구원 김석진 박사의 실증연구에 따르면, 남한 경제는 1968년부터 이미 북한 경제를 추월한 것으로 나타난다. 북한에 비해 한발 앞서고 있다는 사실을 당시 정부나 국민들이 알고 있었다면 더 빨리 포용(engagement)으로 대북정책을 구성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남북관계는 지금과 판이하게 달랐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손세호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16학번(서울대한반도문제연구회 소속)
손세호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16학번(서울대한반도문제연구회 소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