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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와 거물의 숨바꼭질[사진기자의 ‘사談진談’]

입력 | 2020-02-05 03:00:00


사진기자들이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윤석열 검찰총장이 구내식당으로 향하는 모습을 찍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김재명 기자

‘찰칵, 찰칵’ 침묵 속에 여기저기서 카메라 셔터 소리가 들려왔다. “아니네. 언제 밥 먹으러 가는지 아는 사람?”

영하의 날씨지만 사진기자들은 대검찰청 구내식당으로 향하는 윤석열 검찰총장을 찍기 위해 뷰 파인더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언제 지나갈지 모르기 때문에 인기척이 있을 때마다 셔터를 눌러야 한다. 수십 명의 직원이 지나간 다음에야 윤 총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날은 그나마 구내식당으로 가는 모습을 찍을 수 있어서 다행. 외부로 나가는 날이면 기다림은 물거품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지난달 취임한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 총장은 검찰개혁을 비롯해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관련 수사, 청와대 수사팀의 인사 문제 등으로 갈등을 이어가고 있다. 언론 입장에서는 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이 뉴스다. 추 장관의 경우 법무부로 출퇴근하는 모습을 찍을 수 있다. 하지만 윤 총장은 차를 타고 주차장으로 직행하기 때문에 제대로 된 사진을 찍기 어렵다. 총장은 취임 첫날을 제외하고는 늘 지하주차장을 이용한다. 구내식당 갈 때 빼고는 얼굴 볼 기회가 없다. 그렇다고 외부 행사가 많은 것도 아니다. 대부분 대검찰청 내부 일정이며 그것마저도 비공개가 많다.

법무부가 지난달 8일 오후 기습적으로 발표한 검찰 인사는 ‘검찰 대학살’로도 불릴 만큼 윤 총장의 핵심 참모들을 전격 교체했다. 다음 날 언론매체들은 윤 총장의 얼굴 표정을 담기 위해 대검찰청에 모였다. 그러고는 숨죽이며 총장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총장은 구내식당으로 가지 않고 차량을 타고 청사를 벗어났다. 재빨리 따라 붙었지만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이날은 평소와 달리 총장 사진이 꼭 필요했다. 그래서 숨바꼭질하듯 대검찰청 주변을 찾아다닌 끝에 전날 인사 발표가 난 직원들과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

사진기자들은 뉴스의 핵심 인물을 따라다닌다. 그러니 찍히는 사람들 또한 자신이 어떤 모습으로 언론에 보도될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여당 대표 출신인 추 장관은 취임 순간부터 ‘검찰개혁 완수’라는 미션을 받았다. 자신이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알고 온 것이다. 검찰과의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자 추 장관은 국회에 출석해 단호한 표정으로 “총장이 저의 명을 거역한 것”이라고 했다. 이 모습은 사진과 동영상을 통해 전해졌다. 추 장관은 검찰인사위원회를 앞두고 미소가 살짝 보이는 얼굴로 출근했다. 반면 윤 총장은 구내식당을 다녀오면서 고개를 숙인 채 고심하는 모습이었다. 카메라를 의식한 두 거물의 표정에는 이미 메시지가 들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정작 언론이 사실 확인을 하고자 할 때는 모습을 숨기기도 한다. 추 장관은 검찰 인사를 앞두고 법무부를 나섰다. 윤 총장과 마지막 협의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추측이 난무한 가운데 장관이 탄 차량을 따라갔다. 하지만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었다. 장관이 탄 차량은 취재진을 따돌리기 위해 좌회전 차선에서 갑자기 직진을 하거나, 신호 위반을 하면서 주행을 했다. 하지만 바짝 뒤쫓은 취재차량을 따돌릴 수는 없었다. 결국 추 장관이 탄 차량은 청와대로 들어갔다. 인사 발표를 앞두고 대통령의 최종 재가를 받기 위한 것이었다.

조 전 장관의 경우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장관 취임에 앞서 인사청문회 준비단으로 출근하던 시절이었다. 오후 브리핑을 마친 후보자는 취재진이 없는 지하 출입문을 통해 빠져나갔다. 후보자가 향한 곳은 정부과천청사였다. 하지만 법무부가 아닌 다른 건물이었다. 후보자가 들어간 이후 취재진의 접근은 엄격히 금지됐다. 이날 후보자는 청문회를 앞두고 사전 리허설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후보자는 가족들의 여러 의혹이 터져 나오면서 후보자 직을 사퇴할 가능성도 점쳐졌다. 그러나 리허설 강행을 통해 장관직을 향한 의중을 알 수 있게 됐다.

언론의 감시 기능과 사실 확인은 앞으로 더욱 중요한 요소라 생각된다. 의도적으로 보여주는 것과 달리 들키고 싶지 않은 것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뤄진다. 언론은 보도에 앞서 팩트 체크가 생명이다. 기자들은 취재 과정이 혹독하다는 이야기를 들을지언정 확인에 확인을 거듭할 수밖에 없다. 인터넷이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발달로 무분별한 가짜뉴스가 범람하는 가운데 그래도 ‘사진 속 표정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라는 믿음에 오늘도 카메라를 들고 현장으로 달려 나간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