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천문’… 같은 곳을 바라보는 왕과 신하의 브로맨스
조선시대 위대한 과학자로 평가받는 장영실(최민식·오른쪽)과 그의 재능을 알아본 세종대왕(한석규). 그들이 함께한 업적과 신분을 뛰어넘은 특별한 관계를 그린 영화 ‘천문’.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 장영실 역 최민식
조선의 과학자 장영실은 널리 알려진 인물이지만 그의 생애는 미스터리에 싸여 있다. 세종의 총애를 받았지만 갑자기 역사 기록에서 사라진 장영실. 배우 최민식(57·사진)은 영화 ‘천문’ 에서 자신만의 스타일로 그를 스크린에 불러냈다.
오로지 연구밖에 모르는 장인이면서도 유일하게 자신의 진가를 알아주는 주군 세종을 아이처럼 순수한 마음으로 따르며 때로는 질투심마저 드러낸다. 18일 서울 종로구에서 만난 최민식은 “왕과 신하의 뻔한 관계가 아니라 모두가 알고 있는 업적을 만드는 동안 둘 사이에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가 궁금했다”고 말했다.
“요즘말로 ‘아이디어 회의’를 할 때 마냥 좋기만 했겠냐는 생각이 들어요. 의견대립도 하고, 격론도 벌이고, 때로는 정말 아이들처럼 미니어처 같은 걸 가지고 천진난만하게 좋아했을 수도 있잖아요.”
“탁구 칠 때 서브 넣고 왔다 갔다 하다 스매싱 들어오잖아요. 사전 리허설 없이도 리시브가 됐어요. 이게 궁합이다 싶었죠. 석규 눈만 들여다봐도 슬프고. 저도 모르게 눈물이 먼저 나왔는데, 석규가 따라서 같이 우는 겁니다. 시나리오에는 ‘우는 장영실’이라는 표현도 없었는데….”
영화 곳곳에는 한석규와 함께 더 좋은 장면을 위해 머리를 맞댄 흔적이 녹아있다. 시나리오에는 세종과 장영실이 함께 별을 보며 걷는 장면이 임금과 노비의 신분을 뛰어넘어 밤하늘을 바라보며 함께 드러누워 마음속 이상을 터놓는 모습으로 탈바꿈한 것이 한 예다.
○ 세종 역 한석규
“이해하고 익숙해지려면 최소 다섯 번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도(李祹·세종의 이름)’라는 사람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기회였습니다.”
23일 서울 종로구에서 만난 한석규는 이번 작품을 앞두고 ‘세종을 그토록 백성을 사랑하는 왕으로 만든 것은 누굴까’라는 질문에 매달렸다고 했다.
“‘뿌리 깊은 나무’를 찍을 때는 세종이 아버지(태종 이방원)의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했어요. ‘천문’을 찍으며 다시 생각해보면 세종은 어머니의 영향을 받은 것 같아요. 멸문지화를 당한 어머니에 대한 마음, 그런 사람이 장영실을 죽였을까요? 어떻게든 (백성들을) 살려보려는 마음으로 만든 게 한글일 텐데요.”
“가끔 ‘소년 최민식’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때로 돌아가 ‘너 왜 연기를 하니?’라고 묻고 싶다”고 말하는 한석규의 얼굴에 트레이드마크인 천진난만한 미소가 번졌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최민식은 작은 불씨로 시작한 감정을 활활 불태우는 ‘불같은 배우’, 자신은 조용히 감정을 모아 봇물 터지듯 터뜨리는 ‘물 같은 배우’다. 연기 스타일은 물과 불만큼이나 다르지만, 한석규는 서로를 가리켜 ‘같은 상상을 하고 같은 것을 끊임없이 갈망하는 사이’라고 말했다.
“저희가 하려는 일은 사실 같아요. 돌고 돌아 ‘사람’이에요. 민식이 형은 그걸 ‘연민’이라고 표현합니다. 측은한 마음, 사람만 들여다보는 사람만 아는 그런 마음. 세종도 그런 마음이 많은 사람이지요. 세종과 장영실의 관계도 그랬을 겁니다. 공통의 관심사에 대한 끊임없는 호기심, 그래서 서로 대화하면서 살아있는 걸 느끼는 관계요. 저와 민식이 형처럼요.”
이서현 기자 baltika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