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자경 LG명예회장 별세]‘노블레스 오블리주’ 평생 실천
한국 전자 화학 산업의 기틀을 닦은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은 연구개발(R&D)을 중시한 뛰어난 경영인이자 검소하고 소탈한 삶을 보여준 재계의 ‘큰 어른’으로 불린다. LG그룹 제공
구 명예회장은 새벽마다 몰려드는 상인들에게 크림을 나눠 주고 낮에는 종일 공장에서 일하다가 밤이면 이틀에 한 번씩 숙직을 했다. 추운 겨울에는 군용 슬리핑백에 들어가 몸에 온기가 돌 때까지 잠을 설치곤 했다.
1960년대 후반, 뇌종양으로 투병 중이던 구인회 창업주가 장남을 불렀다. “나를 많이 원망했제. 기업을 하는 데 가장 어렵고 중요한 것이 바로 현장이다. 그래서 본사 근무 대신에 공장 일을 모두 맡긴 게다. 그게 밑천이다. 이제 자신 있게 기업을 키워 나가라.”
고인은 검소하고 소탈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기업인으로도 기억된다. 즐겨 입던 체크무늬 고동색 카디건과 검은 뿔테 안경을 20년 동안 쓸 정도였다. 또 LG연암문화재단을 통해 국내 젊은 대학교수의 해외 연구를 지원하고, 사저를 LG상남도서관으로 기증하는 등 교육 분야에 각별한 열의를 쏟았다. 고인은 “국토가 좁고 천연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가 의존할 것은 오직 사람의 경쟁력뿐”이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다.
○ 1.5세대 경영인, LG 창업과 성장의 기틀 닦아
1982년 10월 미국 현지생산법인(GSAI)에서 생산된 제1회 컬러TV를 살펴보는 구자경 명예회장(오른쪽에서 세 번째).
고인은 회장 재직 중 직접 현장을 뛰어다니는 ‘혁신의 전도사’를 자임했다. LG정유(현 GS칼텍스) 주유소에서 일일 주유원으로 직접 주유기를 들기도 하고 LG전자의 AS요원으로 서비스센터에 나가 고객 불만을 듣기도 했다. 전국의 사업장을 돌며 사원들과 대화를 나누고, ‘고객을 위한 가치 창조’와 ‘인간 존중의 경영’이라는 핵심 비전 설파를 위해 500명이 넘는 그룹 전 임원과의, 꼬박 2년이 걸린 오찬 미팅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혁신과 비전은 나에게 신앙과도 같은 것”이라고 종종 말했다.
○ 노태우에 “사회 질서 바로잡으라” 직언도
1995년 2월 구자경 명예회장(왼쪽)이 장남 고 구본무 회장(오른쪽)에게 LG 깃발을 전달하는 회장 이·취임식 모습.
경남 진주 지수초등학교 교사 시절에도 ‘호랑이 선생님’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고 신상우 전 국회부의장은 과거 인터뷰에서 초등학교 은사였던 고인에 대해 “학교 규율을 중시했다”고 회상했다.
평소에는 검소하고 소탈한 모습이었다. 전직 LG그룹 고위 임원은 “신발을 선물받으면 손님맞이용으로만 쓰고, 작은 사무실에는 옛 식당에서나 볼 법한 탁자가 놓여 있을 정도로 검소함이 습관화된 분이었다”고 말했다. 다른 전직 LG그룹 임원은 “은퇴한 뒤 쓸 컴퓨터도 새것이 아니라 계열사에서 쓰던 것을 갖고 오라고 했다”며 “담배를 끊은 뒤에는 담배 한 개비를 갖고 다니며 입에 물기만 했다. 비서진 중 한 명이 ‘버리시겠느냐’고 물었다가 ‘아직 쓸 만한 것을 왜 버리느냐’고 혼난 적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