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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덕 칼럼]眞文게이트, 대통령이 알았을 리 없다

입력 | 2019-12-12 03:00:00

‘이명박 청와대’ 민간인 사찰 때 文“대통령 관여했다면 탄핵감” 밝혀
선거개입 등 청와대의 국정농단 의혹
文이 알았다면 책임 면할 수 없고 몰랐다면 핫바지나 다름없는 셈




김순덕 대기자

개돼지도 학습한다. 지금 속속 불거지는 청와대 관련 의혹은 지난 정부 때 익히 겪은 바라 결말도 거의 예측할 수 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집권세력만 국민의 학습 능력을 너무 무시한다.
자유한국당이 ‘친문 게이트’로 명명한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은 이명박(MB) 정부 때 ‘영포 라인’의 민간인 사찰 사건을 보는 듯하다. 유재수 감찰 무마 의혹과 우리들병원 대출 의혹은 박근혜 정부 때 문고리 3인방과 비선실세 사태를 연상시킨다. 곧 2심 판결이 나올 드루킹 대선 댓글 조작 사건은 매크로 같은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활용됐을 뿐 국정원 댓글 사건의 민간판(版) 같다.

2010년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에서 민간인을 사찰했다”는 민주당 폭로가 나오자 ‘선수’들은 뒤를 봐주는 권력이 없으면 총리실 2급 공무원이 엄두도 못 낼 일임을 단박에 알아챘다. “공직윤리지원관이 범(汎)포항 인맥인 이영호 고용노사비서관-박영준 국무차장과 커넥션을 이뤄 국정을 농단해 왔다”(우상호 당대변인) “MB의 형인 이상득-박영준 라인을 주시한다”(박지원 원내대표)는 지적이 줄을 이었다.

두 달 수사 끝에 검찰은 달랑 공직윤리지원관실 직원들만 직권남용, 증거인멸 혐의로 기소했다. 청와대와 관련해선 증거를 못 찾았다는 것이다.

조국의 명언대로 책략은 진실을 이길 수 없다. MB 5년 차인 2012년 “청와대에서 입막음용 돈을 줬다”는 폭로가 터져 검찰이 재수사에 나섰고, 결국 이영호 비서관과 ‘왕차장’ 박영준은 죗값을 치렀다. 만사형통(萬事兄通) 이상득도 MB 재임 중에 구속이 됐다.

그래도 MB는 환부를 도려내 임기를 마칠 수 있었다. 박근혜 정부의 검찰은 “권력 서열 1위 최순실, 2위 정윤회, 3위가 대통령”이라는 청와대 행정관의 폭로를 뭉개 환부를 키웠다. 작년 말 “청와대 권력 서열 1위는 문재인, 2위는 윤건영 국정기획상황실장, 3위는 김경수 경남지사”라는 대선 댓글 조작 드루킹의 발언은 음미할수록 의미심장하다.

김태우 전 청와대 특별감찰반 수사관이 폭로했던 유재수 감찰 무마 의혹에 권력 2위와 3위의 이름이 등장한다. 유재수 의혹과 우리들병원 의혹에는 대선캠프에서 ‘문재인 펀드’를 운용하는 등 정치자금과 금융 쪽을 맡았던 천경득 청와대 총무인사팀 선임행정관 이름이 나온다. 청와대가 “그런 유전자는 없다”며 부인한 민간인 사찰에는 MB청와대의 사찰 대상이었던 백원우 전 민정비서관이 의혹의 핵심에 서 있다.

전임 정권 같았으면 검찰은 꼬리 자르기로 수사했다가 정권 말이나 돼서 청와대에 칼을 들이댔을 터다.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 윤석열 검찰총장은 조직의 명운을 걸고 수사 중일 것이다. 숱한 선행학습 덕분에 국민은 ‘척하면 착’ 줄거리를 짐작하지만 아직은 알 수 없다. 문재인 정부는 2년 반이나 남아 있고, 검찰개혁이라는 이름의 검찰 장악이 예고된 상태여서다.

검찰이 어떤 수사 결과를 내놓든, 사법부가 공정하게 판결할지도 알 수 없다. 24일 드루킹 사건 2심 판결이 시금석이 될 듯하다.

올 초 1심에서 김경수에게 징역 2년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시켰던 성창호 부장판사는 집권세력으로부터 재판 불복이나 다름없는 맹비난을 받고 재판 업무에서 배제됐다. 2심 주심판사는 우리법연구회 출신으로 변경됐고 김경수는 항소심 최후진술에서도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다. 뇌물로 수표를 받은 사실이 드러나 2015년 대법원에서 유죄 선고가 났음에도 “역사와 양심의 법정에서 저는 무죄”라고 주장했던 한명숙 전 총리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2012년 MB청와대의 민간인 사찰이 드러났을 당시 문 대통령은 “개인에 의해 우발적으로 일어난 것이 아니라 청와대가 정부 안에 범죄조직을 운용한 셈”이라며 MB가 관여한 사실이 드러나면 탄핵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친문 중에서도 진짜 친문들이 대거 등장하는 ‘진문(眞文) 게이트’ 의혹을 문 대통령은 언제부터,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궁금하다.

‘나꼼수’ 김어준의 어법을 따르자면, 각하는 그럴 분이 아니다. 문 대통령이 관여했다면 탄핵감일 것이다. 모르고 있었다면 비서들이 써준 A4 용지 원고나 읽는 핫바지라는 얘기다. 어느 쪽인가.
 
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