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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서비스는 공짜가 아니다[현장에서/조응형]

입력 | 2019-12-04 03:00:00


팬서비스 관련 발언에 대해 사과한 김승현 스포티비 해설위원. KBL 제공

조응형 스포츠부 기자

농구 스타 출신 김승현 스포티비 해설위원은 3일 팬들 앞에 깊이 고개를 숙였다. 지난달 29일 김 위원은 팟캐스트에서 프로농구 KCC의 팬 서비스 논란에 대해 입을 열며 도마에 올랐다. KCC 선수들은 지난달 23일 KGC전에서 대패한 뒤 라커룸으로 퇴장하면서 하이파이브를 하기 위해 관중석에서 손을 내민 여자아이를 외면해 팬들의 분노를 샀다. 김 위원은 이를 두고 “팬과 선수 모두의 잘못이다. 부모님이 그날만큼은 아이가 하이파이브를 하지 않게 뒤에서 잡아줬으면 어땠을까”라고 반문했다. 팬들을 질타하는 것으로 비치면서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김승현은 “지난 주말 내내 반성하는 시간을 가졌다. 농구 팬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것에 대해 반성한다”고 사과의 메시지를 전했다.

1990년대 연세대 농구부를 국내 최강으로 이끈 최희암 전 감독은 당시 수천 명의 오빠부대를 몰고 다닌 소속 선수들을 자주 다그쳤다. 그럴 때마다 입버릇처럼 했던 얘기가 있었다. “너희들이 볼펜 한 자루라도 만들 수 있느냐. 생산성 없는 공놀이를 할 뿐인 운동선수들이 돈도 벌고 대접받을 수 있는 것은 팬들이 있기 때문이다.”

최 전 감독의 말대로라면 팬들은 이미 팬 서비스에 대가를 지불한 셈이다. 입장권, 유니폼, 응원용품 구매 등 직접적인 소비는 차치하더라도, 단순한 ‘공놀이’를 수많은 사람들의 밥줄이 걸린 산업으로 바꿔 놓았으니 운동선수로서는 생계의 은인(?)이다. 그런 팬들을 향한 마음은 승패를 떠나 한결같아야 한다.

미국프로농구(NBA) 전설 르브론 제임스(LA 레이커스)는 최근 경기에서 이긴 뒤 어린 팬에게 암 슬리브(기능성 팔 토시)와 농구화 등 용품을 전부 벗어줘 화제가 됐다. 제임스는 “용품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성인들이 물건을 가져가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어린 팬과 직접 눈을 마주치고 전해준다”고 말했다. 과거 스페인 프로축구 레알 마드리드의 루카 모드리치는 입고 있던 바지를 어린이 팬에게 벗어주고 속옷 바람으로 라커룸으로 뛰어 들어가는 모습이 포착돼 훈훈함을 남기기도 했다.

최 전 감독의 표현을 빌리자면 스포츠 선수들이 볼펜을 만들 수는 없다. 하지만 볼펜과 종이만 있으면 평생 기억에 남는 선물을 할 수 있다. 메이저리그 최고 스타로 꼽히는 마이크 트라우트(LA 에인절스)는 “사인을 하는 데 5초면 되지만 아이들에게는 평생 기억이 된다. 어렸을 때 사인을 받지 못하고 집에 가면 어떤 기분인지를 나 역시 잘 안다. 그래서 어린아이들에게는 반드시 사인을 해주려고 한다”고 말했다.

‘존재 이유’, ‘사명’ 같은 거창한 단어를 굳이 꺼내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선수들이 누군가의 플레이에 환호하던 시절을 조금씩만 돌이켜 본다면 적어도 어린 팬의 가슴에 상처를 주는 일은 없을 것 같다. 진정한 팬 서비스의 출발점도 거기가 아닐까.

조응형 스포츠부 기자 yesbr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