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영화도 ‘女性시대’
왓챠플레이를 통해 지난달28일 국내에 공개한 미국 드라마 ‘킬링 이브’는 첩보기관 요원 이브(샌드라 오)와 킬러 빌라넬(조디코머)사이의 추격전과 묘한로맨스가 관전포인트다. 샌드라오는 이작품을 통해 제76회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TV드라마 부문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BBC AMERICA 제공
영국 첩보기관 MI5의 요원이자 백인 남성 빌(데이비드 헤이그)의 이 대사는 상징적이다. 오랜 기간 이브 폴라스트리(샌드라 오)의 상사였다가 부하 직원이 돼 버린 빌은 뒤바뀐 현실이 난감하기만 하다. 이브는 “10년 넘게 밑에서 일해 줬는데, 내가 상관이라고 괜히 자존심 부리는 것 같았다”고 그를 몰아세운다.
지난달 28일 왓챠플레이에 공개된 미국 드라마 ‘킬링 이브’는 전통적인 남성과 여성의 관계를 깨부수는 시도로 가득 차 있다. 이야기를 이끄는 두 축도 이브와 사이코패스 킬러인 빌라넬(조디 코머)이라는 여성들이다. 남성 장르로 여겨진 첩보스릴러물에서 아시아계 여성 배우 샌드라 오가 주연을 맡은 것도 이례적인 일. 오죽하면 그도 처음 대본을 읽으며 ‘내가 어떤 역할이지?’라며 고민했다고 한다.
시청자들 가운데는 가부장적인 남성을 향한 냉소를 넘어 여성 우월적 시각을 읽어내는 이가 적지 않다. 이른바 ‘젠더 미러링(mirroring·따라하기)’ 드라마인 셈. 제작자 샐리 우드워드도 본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익숙한 장르를 여성의 관점에서 급진적으로 해석하려고 했다. 적절한 시기에 시대정신이 반영된 드라마”라고 평했다.
포털업계 세 여성의 파워 게임을 다룬 tvN드라마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검블유)’는 불필요한 남성과의 로맨스를 최소화했다. 왼쪽부터 전혜진 임수정 이다희. tvN 제공
‘젠더 미러링’은 해외에서 점차 주류가 돼 가고 있다. 마블시네마틱유니버스(MCU) 최초로 여성 히어로가 주연인 영화가 제작되거나(‘캡틴 마블’) 자스민이 술탄이 되고(‘알라딘’) 흑인 여성 배우 러샤나 린치가 007 시리즈 ‘본드 25’의 주인공에 낙점됐다. 25일 종영한 tvN 드라마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검블유)’도 포털 업계의 세 커리어우먼이 권력 다툼을 벌이거나 남성 부하 직원의 몸을 성적 대상화하는 등 노골적인 ‘미러링’으로 주목받았다.
영화 ‘걸캅스’ 이성경(왼쪽), 라미란. 두 여성 형사가 주역이 된 영화‘걸캅스’는 일부여성관객들이 표를 여러장 구입해 흥행성적을 올려주자는 ‘영혼보내기’ 운동을 벌여 화제가 됐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때가 된 거죠. 더 이상 무시할 수 없어요. 그만큼 미디어 속 여성에 대한 무지, 묘사에 변화를 원하고 저항하려는 이가 많다는 뜻이니까요.”(우드워드)
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