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트럼프 압력에… 주미 英대사, 문서유출 4일만에 결국 낙마

입력 | 2019-07-11 03:00:00

‘트럼프 혹평’ 대럭 대사 전격사퇴
트럼프, 3일 내내 英싸잡아 비난… 대럭 “직무 수행할 상황 안돼”
차기 英총리 선출에도 파장
헌트 “美요구 영국에 무례한 일”… 존슨 “美와 좋은 관계 중요”




英 보수당 당대표 경선 토론 9일 영국 ITV가 개최한 집권 보수당 당 대표 경선 토론회에서 보리스 존슨 전 외교장관(왼쪽)과 제러미 헌트 현 장관이 토론하고 있다. 이날 헌트 장관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자신을 혹평한 킴 대럭 주미 영국대사의 교체를 요구하자 “영국에 무례하다”고 주장했다. 반면 친(親)트럼프 인사로 유명한 존슨 전 장관은 “미국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며 대조적 태도를 보였다. 샐퍼드=신화 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를 혹평한 메모가 언론에 유출돼 큰 파장을 낳았던 킴 대럭 주미 영국대사(65)가 10일 전격 사퇴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6일 문건 유출 직후부터 대사 교체를 요구해 왔다. 그의 사퇴는 차기 영국 총리 선출에도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집권 보수당 대표 경선에서 양자 대결에 나선 제러미 헌트 영국 외교장관은 “미국이 무례하다”고 했고, 보리스 존슨 전 외교장관은 “대미관계가 중요하다”며 맞섰다.》


2016년 1월부터 약 3년 반 동안 주미 영국대사로 재직해 온 킴 대럭 대사(65·사진)가 10일 전격 사퇴했다. 그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및 트럼프 행정부를 혹평한 메모가 언론에 유출된 지 불과 4일 만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문건 유출 사실이 알려진 직후부터 영국에 집요하게 대사 교체를 요구해 왔다. 이달에 퇴임할 예정인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는 “당장 교체 계획이 없다”며 대럭 대사를 감쌌지만 세계 최고 권력자 앞에서는 무력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등은 이날 대럭 대사가 사이먼 맥도널드 영국 외교차관에게 사임 서한을 보냈다고 전했다. 그는 이 서한에서 “현 상황에서는 직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없다. 문서 유출 후 내 거취와 임기를 둘러싼 많은 의혹이 있었고 그 의혹을 끝내고 싶다”며 “임기는 올해 말까지지만 현 상황에서는 다음 대사를 지명하는 것이 책임감 있는 수순이라고 믿는다”고 밝혔다.

직업외교관인 대럭 대사는 1977년 외교부 근무를 시작해 일본 도쿄, 벨기에 브뤼셀 등에서 일했다. 유엔 주재 영국대사, 영국 국가안보실장, 데이비드 캐머런 전 총리 외교보좌관 등을 역임한 베테랑이다. 그는 2017년 초부터 지난달 22일까지 본국에 보낸 비밀 외교문서에 트럼프 대통령 및 미 행정부를 “서툴다” “불안정하다” “무능하다”고 혹평해 큰 파장을 불렀다.

트럼프 대통령은 7∼9일 3일 내내 트위터 등을 통해 대럭 대사를 격렬히 비난했다. 메이 총리에 대해서도 “멍청한 방식으로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를 끌고 가 완수하지 못했다. 영국이 새 총리를 맞는 건 좋은 소식”이라고 싸잡아 비난했다. 미국은 특히 9일 예정됐던 브렉시트 관련 양국 무역 협상도 돌연 취소했다. 문건 파문에 대한 미국의 항의 표시란 분석이 제기됐다. 대럭 대사는 8일 트럼프 대통령과 타밈 빈 하마드 알사니 카타르 국왕의 만찬에도 초대받지 못하는 등 외교 업무에서 이미 배제된 상태였다.

트럼프 대통령과 대럭 대사의 악연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6년 11월 미 대선 직후 대럭 대사는 당시 트럼프 당선자에 대해 “그의 성격과 공직 경험 부족을 잘 ‘이용(exploit)’하면 영국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 문건 역시 언론에 유출됐고 보도 직후 트럼프 캠프 측은 극우 정치인 나이절 패라지 브렉시트당 대표(55)를 주미 영국대사로 원한다고 공개적으로 언급했다. 트럼프 지지자로 유명한 패라지 대표는 이번 사태 직후 “대럭 대사는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 완전히 부적절하다. 얼른 사퇴하라”고 촉구했다.

그의 사퇴는 차기 영국 총리 선출에도 중요한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집권 보수당 대표 경선에서 양자 대결을 펼치고 있는 제러미 헌트 영국 외교장관과 보리스 존슨 전 외교장관은 완전히 상반된 태도를 보이고 있다. 헌트 장관은 10일 “미 워싱턴을 방문할 때마다 대럭 대사의 전문성과 지적 능력에 감탄했다. 그의 전문 보고는 외교관으로서의 업무 수행이며 (언론에 자극적 내용만) 선별적으로 유출된 것에 분노한다”고 했다. 그는 하루 전에도 미국의 대사 교체 요구가 “메이 총리에게도, 영국에도 무례한 일이다. 동맹은 존중을 바탕으로 한다”고 꼬집었다. 반면 친(親)트럼프 인사인 존슨 전 장관은 “미국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영국 국빈방문 당시 “차기 총리로 존슨 전 장관을 지지한다”고 밝혀 내정 간섭 논란을 빚었다.

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 파리=김윤종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