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치하에 이화여전 폐교 압력…청년연성소로 격하 훗날 장상 전 총장에 “이대 학력 몰라줘서 속상해” 토로하기도
김대중평화센터가 12일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의 생전 모습을 공개했다. 사진은 1958년 이 여사(뒷줄 왼쪽 네 번째)가 이화여대 사회사업과 강사 재직 당시 제자들과 함께 있는 모습.(김대중평화센터 제공) 2019.6.12/뉴스1
고(故) 이희호 여사는 어느 날 장상 전 이화여자대학교 총장을 찾아 하소연했다. 사람들이 이 여사가 이화여대 출신이라는 것을 알아주지 않는다는 것.
이 여사는 국내에서만 2개의 대학교에 다녔다. 1942년 이화여전(이화여대 전신) 문과에 입학했으나, 4년제 학교를 2년만에 강제 졸업한다. 이후 서울대학교에 1학년으로 입학, 사범대학을 졸업했지만 오랜 기간 이화여대 학력은 인정받지 못했다. 지극히 개인사인 듯 보이나, 그 배경엔 일제 강점기라는 시대적 비극과 맞닿아있다.
이 여사와의 오랜 인연으로 훗날 이 여사의 장례위원장을 맡은 장 전 총장은 12일 기자들과 만나 이 여사와의 추억을 회고했다. 그는 “여사님이 영부인이 된 이후 저를 만났는데, 좀 속상한 것이 있다고 해서 이유를 물었다”며 “이화여고와 이화여대를 다녔는데 언제나 학력이 생략되니 학력을 찾아달라 부탁하더라”고 전했다.
그 과정에서 학교에 남아 있으면 정신대에 끌려갈 수 있다는 소문이 번지면서 상당수 학생은 학교를 그만뒀다. 버틴다고 뾰족한 수도 없었다. 이 여사는 강제로 황국신민 교육에 동행되면서까지 학업을 이어가려 했지만, 1944년 아무런 증명서도 없이 하루아침에 강제졸업했다. 입학한 지 2년 만이었다.
이 여사의 ‘고난의 길, 신념의 길’ 평전에도 이 일이 자세히 담겨 있다. 평전에 따르면 이 여사는 1945년 해방이후 이화여대를 다시 찾았으나, ‘향수’로 유명한 시인인 정지용 당시 문과 과장이 3학년이 아닌 2학년으로 시험을 봐서 편입하라는 말에 좌절했다. 이 여사는 “2년을 허송하다 후배들과 학교를 같이 다닌 것도 억울한데, 시험을 또 쳐서 2학년부터 다닌다니 기운이 쭉 빠졌다”고 설명했다.
서울대 사범대를 졸업했으나, 한참 후에도 이화여대의 끈을 놓지 않으려 했던 이유에 대해 장 전 총장은 “이화에서 여성 지도자가 많이 나왔다. 그 대열에 당신(이 여사)도 함께하고 싶은 것이죠”라고 대변했다.
장 전 총장은 “이 여사의 말에 1944년 당시 학적부를 찾았으나 학교에 남아있지 않았다”고 전했다. 장 전 총장은 당시 이 여사와 함께 학교를 다녔던 학생을 수소문했고 간신히 이 여사의 동창 몇 명을 찾았다. 사진을 다시 찍고, 학적부를 만들어 2년 수료증을 전달했다고 전했다.
이 여사는 여성에게 고등교육의 기회가 많지 않았던 1940년대 당시 미국 유학길에도 올랐다. 평전에 따르면 이 여사는 동생들에게 공부 기회를 양보하라는 아버지의 뜻에 맞서면서 학업을 이어간, 당시 어느 집에나 있을 법한 일도 겪었다. 이 여사의 동력은 고등학교 때 돌아가신 어머니의 강력한 후원 때문이었다. 알려진 대로 이 여사는 대통령 영부인에 앞서 1세대 여성인권운동가로 큰 족적을 남겼다.
장 전 총장은 “김대중 전 대통령은 생전 ‘이 여사가 나보다 더 단단하다’고 이야기했다”며 “이 여사는 생전 미투 운동과 관련해서도, ‘위축될 수 있으나, 더 당당하게 하세요’라고 말했다고 한다”고 전했다.
(서울=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