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양귀비는 당나라 현종 시대의 절세미인을 연상시키지만 서양에서는 오랫동안 잠이나 평화, 죽음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1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전쟁의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상징 꽃이 되었다. 그런데 인상주의 화가 클로드 모네에겐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함께했던 꽃이자 미술사에 획을 그은 명작의 모델이었다.
1874년 역사적인 제1회 인상주의 전시회에 모네는 두 점의 풍경화를 출품했다. 그중 하나가 인상주의라는 말의 어원이 된 ‘인상, 해돋이’고, 다른 하나가 초여름 양귀비 들판을 그린 바로 이 그림이다. 그림 속 배경은 파리에서 12㎞ 떨어진 외곽 마을 아르장퇴유다. 보불전쟁을 피해 런던으로 떠났던 모네는 1871년 아르장퇴유에 정착해 1878년까지 살았다. 이곳에서 그는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여러 문제작들을 완성했다.
가로로 분할된 화면의 절반 위는 하얀 구름이 잔뜩 낀 하늘이, 절반 아래는 붉은 양귀비꽃 들판이 차지하고 있다. 전경에 그려진 양산 쓴 여자와 어린 아이는 화가의 아내 카미유와 아들 장이다. 이들은 멀리 보이는 언덕 위에도 등장한다. 지평선의 경계는 희미하고 인물의 세부묘사는 과감히 생략됐다. 양귀비꽃들도 빠른 붓질로 점을 찍어 표현했을 뿐이다. 당시 사람들에겐 미완성 그림이나 습작으로 보였을 것이다. 모네는 온갖 모욕을 견뎌야했지만 지금의 눈으로 보면 추상미술의 전조를 보여주는 혁신적인 그림이다.
이은화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