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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한 불 끄러 일본부터 찾은 자리프 이란 외교장관[광화문에서/박형준]

입력 | 2019-05-29 03:00:00


박형준 도쿄 특파원

이상했다. 25∼28일 일본을 국빈 방문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표정은 왠지 밝지 않았다. 26일 박진감 넘치는 스모 경기를 볼 때엔 ‘화가 났나’ 싶을 정도로 뚱해 보였다.

그의 지난 나흘간 동선을 떠올려 봤다. 가장 활기 있었던 모습은 25일 오후 6시경 도쿄 미국대사관에서 실시된 일본 기업인 약 30명과의 간담회 때였다.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한 소프트뱅크, 도요타자동차 사장 등이 참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만면에 웃음을 띠었고, 각 기업인과 1, 2분씩 이야기를 나눴다. 미국에서 10시간 이상 비행기를 타고 도쿄 하네다공항에 도착한 직후였다. 73세인 그가 체력적으로 힘들었을 텐데도 표정은 활기차 보였다.

28일 아사히신문에 보도된 익명의 미 정부 관계자 발언을 보고서야 의문을 해소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외국 정상이 미국 제품을 사주거나, 자신을 위대한 지도자로 존경해 주길 기대한다. 아베 신조 총리는 양쪽 모두를 갖춘 귀중한 존재다.”

아베 총리는 국빈 방문 기간 트럼프 대통령에게 ‘과하다’ 싶을 정도로 정성을 쏟았다. 26일에는 오전 골프, 오후 스모 관람, 저녁 만찬을 하며 하루 종일 붙어 다녔다. 27, 28일 트럼프 대통령의 일왕 접견, 궁중 만찬, 해상자위대 호위함 승선 등 공식 행사 때에도 한 번도 빠지지 않고 트럼프 대통령 옆을 지켰다.

일각에선 ‘실익 없는 보여주기식 외교’라는 비판도 있다. 기자의 생각은 다르다. 아베 총리는 오모테나시(손님을 극진하게 모시는 일본 문화) 외교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의 마음을 훔쳤다고 본다. 그만큼 일본의 외교적 운신의 폭도 넓어질 것이다. 미국이 중국과 무역전쟁을 벌이고 있지만, 일본과는 일정까지 조정해주며 대화로 풀려는 게 단적인 예다.

두 정상의 밀월은 한국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26일 골프장에선 아베 총리가 카트를 몰고 옆자리에 트럼프 대통령이 앉았다. 2시간 반 동안 아베 총리가 강제징용 및 위안부 문제 등에 대해 미 대통령에게 말한 방향이 어떤 것일지는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다.

일본 정부 당국자는 기자에게 5년 전과 현재의 미일 관계를 이렇게 비교했다. 그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때는 아베 총리가 야스쿠니신사 참배, 고노 담화 수정 시도 등으로 미국과 밀착하지 못했다. 지금은 다르다. 징용 문제에 있어 미국은 일본 편”이라고 했다. 2013년 12월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두고 미 정부는 공식적으로 ‘실망했다’는 논평을 냈지만 지금은 그런 분위기를 찾아볼 수 없다.

미일 정상의 ‘남다른 밀월’은 타국에서 먼저 알아본다.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교장관은 15일 급히 일본을 찾았다. 하루 뒤 아베 총리와 고노 다로 외상도 잇달아 만났다. 이후 아베 총리는 미국과 이란 간 긴장 해소를 위해 이란을 방문키로 결정했다. 이란 정부가 아베 총리를 ‘트럼프 대통령을 움직일 수 있는 사람’으로 평가했다는 뜻이다.

이란뿐일까. 이달 초만 해도 잇따라 미사일을 쏘던 북한은 어떨까. 혹시 미국을 상대하기 위한 협력 파트너로 한국과 일본 중 누구를 택할지 저울질하는 건 아닐까. 과한 상상이기를 바란다.

박형준 도쿄 특파원 love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