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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R]대중, 상류층의 위선에 방아쇠를 당기다

입력 | 2019-05-08 03:00:00

베스트셀러로 본 트렌드: 1930년대 소설 ‘찔레꽃’의 가치 재조명




상류층의 타락과 부패의 폭로는 국내 대중문화 콘텐츠의 전형적인 문법 중 하나다. 최근 인기를 끈 드라마 ‘SKY캐슬’은 대한민국 상위 0.1%가 모인 SKY캐슬에서 교육을 매개로 돈과 권력을 독점하려고 발버둥치는 상류층의 비인간적인 모습을 폭로했다. 시청자들은 입시에 집착하는 상류층의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구경했다.

대중이 상류층의 이면을 다룬 이야기에 열광하는 건 비단 최근에 생겨난 현상이 아니다. 1937년 조선일보에 연재된 김말봉의 소설 ‘찔레꽃’ 역시 상류층의 위선과 부도덕을 폭로해 큰 인기를 얻었다. 안타깝게도 찔레꽃은 당시 대중의 큰 성원을 얻은 베스트셀러였음에도 불구하고 그간 한국 문학사에서 잊혀져 왔다. 오늘날 김말봉이라는 작가를 아는 사람이 많지 않듯, 찔레꽃 역시 ‘여류(女流) 작가가 쓴 통속소설’이라고 폄하되며 한국 문학사에서 지워진 탓이다.

하지만 찔레꽃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상류층의 이야기에 열광하는 대중의 숨은 욕망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새롭게 주목할 만하다. 동아비즈니스리뷰(DBR) 271호(4월 15일자)가 불운의 베스트셀러였던 찔레꽃의 가치를 재조명했다. 주요 내용을 소개한다.

○ 찔레꽃, 상류층의 민낯을 폭로하다

찔레꽃은 가난하지만 아름다운 여성 안정순이 은행장 조만호의 집에 가정교사로 들어가면서 겪는 일을 그리고 있다. 등장인물들은 아주 복잡한 애정 관계에 이중삼중으로 얽힌다. 가령, 정순은 조만호 부자(父子)의 구애를 동시에 받고, 정순의 약혼자 민수는 조만호의 딸 경애의 애정 공세를 받는 식이다. 오늘날의 시선에서 봐도 상당히 자극적인 설정이다.

찔레꽃처럼 희고 순결한 정순을 중심에 두고 진흙탕처럼 엉클어진 관계는 살인이라는 극단적 사건으로 치달으면서 마침내 종지부를 찍는다. 당대 독자들은 번개 치듯 속도감 있게 전개되는 사랑의 화살표의 마지막이 궁금해 끝까지 읽을 수밖에 없었다.

소설이 복잡한 애정 관계를 통해 독자들에게 드러낸 것은 상류층으로 행세하는 조만호 일가의 ‘민낯’이다. 본처에 기생첩까지 거느리고 미모의 가정교사까지 삼키려 하는 조만호의 뻔뻔한 탐욕, 책상물림으로 자라나 사회운동을 하겠답시고 떠들지만 실제로는 아버지 말 한마디에 꼼짝하지 못하는 아들 조경구의 유약함, 유학까지 마치고 온 잘난 여자처럼 보이는 조경애의 경박함은 지식인 청년 정순과 민수의 시선으로 낱낱이 폭로된다. 대중은 조만호처럼 현실 사회에서 위세를 떠는 인물들을 씹고 뜯는 데 흥분했다.

○ 타락한 상류층과 도덕적인 대중

이처럼 가난하지만 정직한 청년의 시선을 통해 상류층의 이면을 폭로하는 방식의 문법은 오늘날 SKY캐슬 같은 드라마가 상류층의 이야기를 폭로하는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대중의 호기심은 일정한 방향성을 보여준다. 순결하고 고귀한 노블레스(noblesse), 즉 대중보다 우월한 상류층의 이미지가 아니라 대중보다 못한, 그래서 씹고 뜯을 수 있는 상류층의 이미지를 강화하는 방향이다.

대신 부와 사회적 지위, 사회적 영향력 등 여러 측면에서 명백하게 상류층에 뒤떨어지는 대중이 내세울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바로 도덕성이다. 이런 이야기는 상류층의 민낯을 폭로할 권위를 가진 도덕적인 인물, 돈과 권력과 욕망을 둘러싼 그들의 게임에 매혹당할지언정 결코 게임에 빠져들어 타락하지는 않는 인물, 상류층이 판을 짜는 사회를 당당히 거부할 수 있는 인물을 앞세운다.

1930년대 소설 찔레꽃이 이 자리에 내세운 것은 가난하지만 학식과 도덕을 갖춘 지식인 청년 정순과 민수였다. 당대 대중 독자들의 생활수준은 소설에 묘사된 조만호 일가와 한참 거리가 멀었을 뿐 아니라 지식인 청년인 정순, 민수와도 달랐을 것이다. 하지만 대중이 서고 싶은 위치는 상류층의 부도덕을 문제 삼음으로써 그들이 독점하고 있는 부와 지위의 정당성을 심문할 수 있는 위치, 바로 정순과 민수의 자리였다. 대중은 이 자리에 자신들을 위치시킴으로써 기득권층에 대한 본능적인 저항을 정당화하고 그들보다 도덕적으로 우월한 ‘우리’라는 자기상을 만들어 나갈 수 있었다.

○ 우리 혹은 그들, 구분 짓기의 욕망

소설에서 나타나는 상류층과 대중의 구분 짓기는 역사적으로 근대사회의 중심 세력으로 부상한 부르주아가 스스로를 귀족과 구분 지은 방식과 비슷하다. 부르주아 세력은 기존 사회를 지배하던 귀족을 문란하고 타락한 계층으로 규정하면서 문화적, 상징적인 혁명을 수행했다. 예컨대 일생 동안 한 사람에게만 순결하고 고귀한 사랑을 바친다는 ‘낭만적 사랑’의 관념은 이런 문화적 혁명의 일환으로 형성됐다. 당시 귀족들은 정략결혼을 통해 부의 분산을 막고 지위와 권력을 세습했는데 공공연히 애인과 정부를 두는 것이 유행처럼 번져 있었다. 부르주아는 이런 점을 꼬집어 귀족의 성적 문란, 타락을 비판하며 스스로를 귀족과 반대되는 정결하고 도덕적인 계층으로 표상했다.

오늘날 과거와 같은 신분 질서는 폐지됐다. 그러나 자본주의 질서 아래 ‘금수저’와 ‘흙수저’로 상징되는 새로운 신분 사회로 진입한 대중은 문화적 투쟁을 통해 기득권 체제에 문제를 제기하는 동시에 ‘그들’과 다른 ‘우리’라는 자기상을 정립해 나간다. 상류층의 부도덕은 기득권층의 존재 자체에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강렬한 방아쇠로 작동한다. 단순히 자극적인 것처럼만 보이는 대중문화 콘텐츠는 사실 이 같은 구분 짓기의 욕망을 건드리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기업 경영진의 ‘갑질’ 또한 상류층의 민낯을 드러내면서 대중의 적대적인 감정을 결집시키는 지점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기업이 윤리적 모범을 보임으로써 기업의 구성원이자 소비자인 대중과 함께 ‘우리’의 입장에 서는 데 더 신경 써야 하는 이유다.

이경림 서울대 국문학과 박사 plumkr@daum.net

정리=배미정 기자 soya1116@donga.com